유럽서도 좌 - 우, 진보 - 보수 대결 뜨겁던데… 색깔싸움 아닌 정책대결이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1.그저께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우파인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가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함께 결선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반면 헝가리에서는 좌파인 사회당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더군요. 대체 좌·우파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좌·우파란 용어(키워드 참조)는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약 2백년 동안 서구에서 서로 맞서는 정치세력을 가리키는 일상용어로 자리를 잡았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일반적으로 우파는 점진적·보수적이며, 좌파는 급진적·진보적이라고 풀이하고 있어요. 20세기 들어 좌파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우파는 자유주의나 자본주의의 입장에 선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고요.

1994년 '좌파와 우파'란 글을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좌·우파를 여러가지 잣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우파는 자유를 추구하고 좌파는 자유보다 평등을 중시하지요. 또 우파는 권위와 복종, 좌파는 참여와 해방을 앞세운답니다. 이밖에 우파가 안정과 질서를 강조하며 폐쇄적이고 개인의 삶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고 있다면, 좌파는 개방적이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를 강조한다는 점도 차이라고 할 수 있지요.

2.좌·우파를 그렇게 구분하니 이해하기 쉽군요.

하지만 앞의 구분은 단지 일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단순하게 설명한 것이에요.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서양의 역사에서 좌파와 우파의 의미는 시대와 장소·상황에 따라 변해 온 상대적인 개념입니다.예를 들어 흔히 좌파로 분류되는 노동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온건한 세력은 우파라고 불립니다. 또한 우파에 비해 좌파가 상대적으로 평등을 더 중시하지만 독일의 나치스 같은 극우주의는 좌파 못지 않게 독일사회 내 계급과 신분의 평등을 주장하기도 했어요.

3.정책적으로는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궁금하네요.

경제정책을 예로 들어 살펴보지요. 좌·우파의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비교되기 때문이에요.좌파 사회주의 세력은 자유와 시장의 원리를 금지하거나 극도로 제한합니다. 한마디로 정부가 나서서 경제를 쥐락펴락 하겠다는 발상이에요. 철도·전력·교통 등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는 물론이고 의료·연금분야까지도 국가가 간섭하고 독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반면 우파들은 친기업적인 정책을 약속합니다. 가령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유와 시장경쟁의 원리를 강조해요. 또 기업에 대한 세금감면,민영화 등 신자유주의(키워드 참조)적인 정책을 내세우지요.우파를 대표하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확대하며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은 우파 입장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는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해 우파정부가 좌파의 사회복지정책을 받아들이거나 좌파정부가 우파의 국영기업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기도 해 경계구분이 모호한 점도 있어요.

4.유럽의 선거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 자주 등장하는 진보·보수라는 용어는 좌·우파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진보·보수를 좌·우파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면 일단 이해가 쉬워요.좌·우파란 개념을 사상이나 철학분야에서 다룰 때 흔히 쓰는 용어라고 보면 됩니다. 흔히 좌파는 새로운 변화를 바라며 기성의 권위와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 우파는 전통과 현상황을 유지하려는 세력이라고 말하지요.이런 점에서 우파는 보수, 좌파는 진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항상 우파는 보수이고 좌파는 진보라는 생각도 옳은 것은 아니랍니다. 대표적인 극우파 세력인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일당은 보수주의와는 거리를 두었고, 영국의 보수당은 1867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도시노동자에게 선거권을 보장하는 매우 진보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거든요.

5.최근 몇년 사이 유럽의 총선거에서 중도좌파나 중도우파 정권이 들어섰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들은 좌·우파와 어떻게 다른가요.

대표적인 중도좌파 정권으로는 영국의 노동당과 독일의 사민당(SPD) 정부를 들 수 있지요. 이 두 정권은 기본적으로 좌파 사회당 계열이지만 그들의 정책은 앞서 언급한 전통적인 좌파 사회주의가 아니라 우파 쪽으로 한발짝 다가섰다고 보면 된답니다.중도좌파 정권은 가령 '제3의 길'(키워드 참조)을 내세우며 과도한 복지정책에 제동을 걸고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등 우파정책을 채택하고 있지요.반면 포르투갈·노르웨이·이탈리아 등에서 집권하고 있는 중도우파 정권은 우파의 기본노선을 따르되 좌파적인 사회복지정책을 받아들이는 등 좌파 쪽으로 약간 기울었다고 할 수 있어요.

6.우리나라에서도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대선 후보간에 서로 상대방을 좌·우파로 몰아세우며 이념논쟁이 불거졌는데요. 이것이 프랑스 등 유럽의 최근 선거과정에서 등장하는 좌·우 논쟁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논쟁의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오늘날 유럽을 포함한 서구의 좌·우파 정치세력은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더이상 서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대로 우파와 좌파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상대방의 정책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협조도 하고 있어 이전의 좌·우파 구별이 의미가 작아지고 있지요. 따라서 좌·우파 정당들이 벌이는 논쟁은 이념논쟁이라기보다 주로 정책대결입니다.반면 한국에서 좌파는 친북세력, 우파는 반공세력으로 이해되고 있어요. 유럽식의 좌·우파와는 크게 차이가 있지요.그래서 분단 이후 이른바 색깔론이라 불리는 좌·우 논쟁은 선거 등 중요 고비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해 정치적인 반대세력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답니다.

좌·우파에 관한 보다 상세한 정보는 아래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보세요.

▶www.polcom.co.kr

▶www.mediaonul.com

▶emerge.joins.com

▶www.encyber.com

▶www.theory.org.uk/giddens.htm

▶home.dreamx.net/byungkeej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