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문단의 따뜻함으로 우리 이웃에 희망을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외국 책동네 이야기를 두 가지 전하고 싶습니다. 북 싱 오브 볼티모어(Book Thing of Baltimore)라는, 헌책을 기증받아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공짜로 나눠주는 ‘책방’이야기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말마다 수천권의 책이 새로운 주인을 찾는 그곳의 단골손님은 노숙자라는군요. 그 책방을 꾸려가는 사람이 몇 년 전 겨울에 그곳에서 목격한 에피소드는 정말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한 노숙자가 근처의 쉼터로 향하기 전에 긴긴 밤에 읽을 책을 찾느라 서가를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50대 부인이 책이 가득한 가방 두 개를 든 채 벤츠에서 내렸습니다. 이어 그 노숙자와 부유한 부인은 책을 놓고 대화에 빠지더랍니다. 존 그리샴은 어떻느니, 스콧 터로가 더 낫다느니…. 그렇게 두 사람은 30분 이상 격론을 벌이더라는 것입니다. 정말 멋진 노숙자지요.

다른 한 이야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네이딘 고디머가 엮은 ‘Telling Tales’에 얽힌 사연입니다. 기획 의도가 무척 따뜻합니다. 세계적인 대중가수들은 자선 콘서트를 통해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데 반해 문인들의 활약은 미약했다는 반성에서 탄생한 책이랍니다. 세계 문단을 주름잡고 있는 기라성 같은 작가 21명이 각각 작품을 한편씩 내놓았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귄터 그라스, 아서 밀러, 살만 루슈디, 마거릿 애투드, 존 업다이크 등 하나같이 거물급입니다.

고디머는 “뮤지션들은 타고난 재능을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도 문단은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소극적이었다”고 반성했습니다. 고디머가 작가들에게 내건 유일한 조건은 에이즈에 관한 작품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이 삶의 충만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랍니다.

또 한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기 쉬운 때입니다. 우리 문단에서도 고디머처럼 가난한 이웃에 다가가려는 이벤트를 벌인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을수 있겠습니까. 그런 이벤트는 긴 불황에 지친 문단에도 활력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정명진 기자 Book Review 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