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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ℓ車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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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솔린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6년 이다. 독일의 고틀리프 다임러가 4륜마차에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를 개발했고, 이 해 카를 벤츠도 가솔린 엔진을 단 3륜차를 선보였다. 당시 다임러가 만든 자동차는 1.1마력에 최고 속도가 시속 16㎞에 불과했다. 마차보다 느렸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자동차 회사가 속속 생겨나면서 자동차 속도 경쟁이 본격화했다. 빠른 차가 명차의 기준이 되면서 속도 경쟁은 곧 기술 경쟁이 됐다. 요즘 시속 3백60㎞를 넘는 자동차들이 승부를 겨루는 '포뮬라 원(F1)'은 자존심을 건 기술 경쟁의 현장이다. 그러나 이제 승용차의 속도 경쟁은 무의미하다. 독일의 아우토반에서도 시속 2백50㎞ 이상 달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힘이 넘치는 고급 승용차들도 대개 시속 2백50㎞에서 엔진이 잠기도록 장치가 돼 있기 때문이다. 대신 고급차 개발 경쟁은 치열하다.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올 제네바 모터쇼에서 가격이 38만유로(약 4억4천만원)가 넘는 마이바하(12기통, 5백50마력)를 선보이자 폴크스바겐은 예상가격 1백만유로짜리 부가티(16기통, 1천1마력)를 곧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롤스로이스를 내년에 인수하는 BMW도 비슷한 고급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1백만유로는 독일에서도 저택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독일은 물론 전세계 자동차 업계가 이처럼 고속·고급차 경쟁을 벌이는 한편으로 기름 덜 먹는 경차의 개발에도 열띤 경쟁을 하고 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본격화한 이 경쟁의 1차 목표는 '3ℓ차'였다. 1백㎞를 달리는 데 연료 3ℓ가 드는 자동차로, 우리식 연비로는 33.3㎞/ℓ에 달하는 고연비 자동차다. 선두주자는 역시 대중차 메이커의 이미지가 강한 폴크스바겐으로 98년 세계최초의 공인 3ℓ차인 루포 TDI를 시판했다. 이 회사가 15일 '1ℓ차'를 선보였다. 1ℓ의 경유로 1백㎞를 달리는 꿈의 자동차다. 좀더 실감나게 표현하면 티코에 한번 가득 채우는 기름(30ℓ)으로 서울~부산 간을 일곱번 달리는 초에너지절약형 자동차다. 조금 과장하면 기름 냄새만 맡아도 굴러가는 자동차인 셈이다.

이제 세계 제5위의 자동차 대국이 된 우리도 언제까지 남의 뒤만 쫓아갈 수는 없다. 특히 배출가스에 대한 각국의 규제가 점점 강화되는 점을 감안, 이러한 고연비·저공해 자동차의 개발에 박차를 가할 때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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