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산책] 올 최고 투수 배영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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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훈련을 앞두고 몸만들기에 들어간 배영수가 웃통을 벗어젖힌 채 바벨을 들고 있다. 그는 시즌이 끝난 뒤 근 한달간 운동을 게을리해 배에 임금 왕(王)자가 없어졌다고 넉살을 부렸다. 대구=조문규 기자

"무슨 상을 받아도 영광은 순간이지요. 중요한 건 다시 이어질 다음 시즌의 성적이고요." 골든 글러브, MVP, 올해의 선수상(선수협의회)…. 프로야구 선수 로서 연말에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쓴 삼성 투수 배영수(23). 표정과 말투에 아직 10대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고졸 5년차지만 속은 꽉 찼다. 까칠한 밤송이 머리와 늘 입가에 담는 미소가 그를 만년 신인처럼 보이게 할 뿐. 어느덧 그는 한국 프로야구판의 굵은 기둥이 돼 있다. 정규시즌 다승 공동 1위(17승2패), 승률 1위(0.895). 특히 현대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의 '10이닝 노히트노런'은 그의 단단한 어깨와 질긴 근성을 보여준 강렬한 장면이었다.

지난 14일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만난 배영수는 "어제서야 '불려다니기'가 끝났어요. 이제 운동 좀 할 수 있게 됐어요"라며 홀가분해 했다.

그가 '최고'로 커가는 건 끊임없이 강해지려는 욕심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이후 시상식이다 회견이다 이벤트다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어수선함 와중에도 그는 보디빌더인 친구(문성호씨)에게 개인 트레이닝을 부탁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의 말마따나 "모든 걸 가라앉히고" 매일 네시간씩의 혹독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생각이다. 시즌 막판에 알게 된 예쁜 아가씨에게도 연락을 끊었다. "서른 넘어 장가갈 때까진 연애도 안 하기로 했어요"라고 했다. 가끔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것 말고는 딱히 취미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불려다니기 끝, 다시 운동 구슬땀

배영수에게는 '밝히고 싶지 않은 얘기'가 있다. 가족 얘기, 어릴 적 얘기다. 어려움을 딛고 훌륭하게 큰 '포레스트 검프'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강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두살 위 누나와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다. 개인택시를 모는 큰아버지가 보살펴 줘 생활고를 겪진 않았지만 운동을 하면서 부모로부터 따뜻한 응원이나 지원을 받아보진 못했다. 고교 때 팔꿈치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둘 뻔했을 때 부모 후원 아래 편히 운동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를 악물었다. 마지못해 조심조심 이런 얘기를 들려주더니 "지금도 가족끼리 야구장에 구경나온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요"라고 한다.

세 식구는 그동안 10여평짜리 원룸에서 살았다. 그러다 올 연봉(1억1000만원)으로 대구에 35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외제 승용차(BMW X5)도 한대 장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 맛'에 빠진 건 결코 아니다. 얼마 전 그는 상품으로 받은 10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대구.경북지역 보호시설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상금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다 합쳐서 4000만원쯤 받았어요. 용돈 좀 빼놓곤 좋은 일에 쓸까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야구를 시작한 칠성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교(경북고) 때까지 "야구 못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삼성에 입단하게 된 것도 모교를 찾았던 선배 이승엽(당시 삼성)선수가 구단에 "후배 중에 물건이 있다"고 추천해 이뤄졌다. 중학교(경북중) 때도 워낙 두드러져 선배들이 '집합'을 시켜도 "맞으면서는 야구 안 한다"고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그랬으니 프로 데뷔 이후 성적이 만족스러웠을 리 없다.

"첫해 단 1승도 못 거두고 '새가슴' 소리까지 들었을 때 실감했어요. 프로에 왔다는 걸. 그때 다짐했지요. '배영수=에이스'라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때까지는 죽어라 운동만 하기로. 올해 그 목표를 향한 첫 단계에 선 것뿐이에요."

연말 상금은 불우이웃에 선뜻

배영수는 지금 좋은 여건에 있다. '국보급 투수'로 불린 선동열 감독이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 배영수가 어려서부터 라커에 사진을 붙여놨을 정도로 존경해온 우상이 선동열이다. 1m85㎝.88㎏의 체격은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다. 슬라이더.반 포크.투심 패스트볼 등 익히는 구질도 족족 위력적인 무기가 되고 있다.

"좋은 게 많아졌어요. 어딜 가도 공짜가 많아요(웃음). 그렇다고 만족해선 안 되지요. 이제서야 뜻대로 공 좀 던질 수 있게 된 것뿐인데요 뭐." 그는 "헤어스타일이 촌스럽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라면서 "3~4년쯤 꾸준한 성적을 낸 다음에 멋을 부려볼게요"라고 했다.

대구=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mailto:chomg@joongang.co.kr>

*** ◆배영수는…

▶출생=1981년 5월 4일 대구

▶체격=1m85㎝.88㎏

▶학력=칠성초-경북중-경북고

▶데뷔=2000년 삼성 1순위(계약금 2억5000만원)

▶성적=통산 49승 24패 방어율 4.05

▶수상=2004 시즌 MVP, 투수부문 골든글러브, 프로야구선수협 올해의 선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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