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되는 文人과 문학상 문단도 거품 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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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원로 소설가 이호철(71)씨가 월간 문학지 『문학사상』 4월호의 권두칼럼에서 "문인들이 마구 양산되는 현 문화 상황을 우려한다"는 격문(檄文)을 토해 냈다.

분단 문학의 일급 작가로 평가받는 그는 한국 문단의 현 수준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다는 뼈아픈 진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작금에 정치를 비롯해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소위 '구조개혁'을 위한 몸부림이 거세게 꿈틀거리고 있다. 다른 부분은 문제의 소재나 쟁점이 비교적 분명해 보이는데 우리 문단은 도대체 어디부터 가닥을 잡아야 할지 막막해 보인다."

그 막막함의 원인을 "죄다 무슨 거품 속에 휘말려들어 관련 간행물이며 상이라는 거며 작가며 시인이며 너무너무 마구잡이로 양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치 홍콩 영화 몰락의 시나리오를 보는 듯 하다.

50년 가까이 문단생활을 할 이씨의 말이니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씨의 진단은 환부를 가리키는 일일 뿐 그 질환의 원인을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문인 양산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등단시켜 주겠다며 문학에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재료를 받아 챙기고 정기구독자 모집을 강요하는 저질 문예지, 작품의 시비와 가치를 가려주지 못하는 주례사(主禮辭)비평, 검증받지 않은 작가에게 수여되는 문학상….

이는 지난해 『문학권력』을 펴낸 강준만 교수나 소장파 비평가들이 지적한 사안이기도 하다. 이제 실전 경험과 노련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문단이 그런 주장과 분석을 더 세련되게 하고 구체화할 시점이다.

따라서 이씨가 지적한 한국 문단의 중병을 치료하는 일은 문인 양산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문인들을 양산하고 있는가에 관한 세세한 분석과 처방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최선의 치료를 위해 마음을 열고 문단 스스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이호철씨의 격문을 시작으로 문단 개혁을 위한 난상토론이 벌어지길 기대해 보자.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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