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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고문한 의혹 경찰 5명 전원에 사전구속영장 청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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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남부지검은 피의자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양천경찰서 소속 경찰관 5명 모두에 대해 21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형법상 가혹행위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독직폭행)가 적용됐다. 이영렬 차장검사는 “해당 경찰관 5명을 조사한 결과 자백을 목적으로 고문을 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영장 청구 이유에 대해서는 ▶군사정부 시절에나 있었던 일로 사안이 매우 중한 점▶일부 피해자가 상해를 입은 점 ▶고문 가해자와 피해자가 경찰과 구속 피의자로 특수 관계에 있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 점 등을 들었다. 과거 군부정권 때 일부 경찰관이 고문혐의로 구속된 적은 있었지만 단순한 형사사건을 처리하다 독직폭행으로 사법처리된 경우는 드문 일이다.

검찰은 이들이 지난해 8월부터 지난 3월까지 20여 명의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상당수에게 수갑을 뒤로 채워 들어올리는 ‘날개 꺾기’ 등의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확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내사한 내용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양천서 강력팀에서 일정 기간 관행적으로 가혹행위가 용인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혐의 내용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영장을 청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혹행위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검찰이 적용한 독직폭행 혐의는 검찰·경찰 등 인신 구속에 관한 직무를 하는 사람이 직권을 남용해 형사피의자 등에게 폭행 또는 가혹한 행위를 하는 범죄다. 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가중 처벌을 받는다.

검찰은 경찰관들과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자들과 대질 신문도 벌였다. 일부 경찰관은 “자해를 하려는 피의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폭력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양천서가 조직적으로 가혹행위를 묵인 또는 은폐하려 했는지도 조사 중이다. 검찰은 인권위의 조사에 포함된 피의자의 진술에 주목하고 있다.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한 이 피의자는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자 몇 분 뒤 양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경찰관들이) 별일 아니라고 하자 ‘살살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지휘 라인이 가혹행위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 소환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또 양천서 강력5팀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가 3월 9일부터 4월 2일까지 25일간 영상 기록이 저장되지 않은 경위도 조사하고 있다. 30개 CCTV 중 16개의 CCTV의 촬영 내용이 저장되는 한 개의 하드디스크에 저장 기록이 전혀 없었다.

◆경찰 대책 마련 착수=강희락 경찰청장은 21일 “(경찰의 감찰에서도) 가혹행위가 일부 확인됐다”고 말했다. 강 청장은 이날 “가혹행위를 통해 수사 실적을 올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다”고 사과했다. 이어 “자백을 받아 처리한 사건의 실적 점수를 낮추겠다”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객관적인 증거를 찾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 사건을 처리하려는 ‘유혹’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 잘못된 행동을 한 경찰관을 비호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한 경찰관은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일선 경찰관들이 위축될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강서양천시민모임 등 시민단체 회원들은 양천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인권적 수사 관행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 경찰관에게 인권 교육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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