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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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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경제 19면

남을 탓하는 것과 관련한 우리 속담이 많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 ‘내 탓 네 탓 수염 탓’ ‘못살면 터 탓’ ‘소경이 넘어지면 막대 탓’ 등이 있다. 남을 탓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탓’은 주로 부정적인 현상이 생겨난 까닭이나 원인을 나타낼 때 쓰인다. 반면 좋은 일에는 ‘덕분(德分)’이 쓰인다. “선배님 덕분에 맡은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그렇다면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에서 ‘잘되면 제 탓’은 부정적 의미와 어울리는 ‘탓’의 용법상 맞지 않는다. 좋은 일은 ‘덕분(덕)’과 어울려야 하므로 ‘잘되면 제 덕분(덕) 못되면 조상 탓’이 돼야 한다. 둘 다 ‘탓’으로 처리한 것은 아마도 대구법(對句法) 또는 반복법으로 리듬감을 살리기 위함이거나 ‘탓’을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말로 ‘때문’이 있다. ‘때문’은 긍정이나 부정적 현상을 가리지 않고 쓰인다는 점에서 ‘탓’ ‘덕분’과 구별된다. 따라서 “잘되면 제 탓(→덕분) 못되면 조상 탓”은 “잘되면 저 때문 못되면 조상 때문’으로 바꿔 써도 의미상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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