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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쩍 않는 위안화, 미국·중국의 속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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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실망한 미국 … “G20 김빼기용 확인”

일요일인 20일(현지시간) 저녁 월가는 중국 인민은행의 21일 아침 환율 고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인민은행이 19일 위안화 환율 변동 폭을 좀 더 유연하게 하겠다고 발표한 뒤 고시하는 첫 환율이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21일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현지 언론이 전했다. 인민은행이 고시한 환율은 달러당 6.8275위안으로 전혀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민은행은 19일 발표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위안화 절상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자 서둘러 속도 조절에 나서기도 했다. 발표 하루 만에 재차 내놓은 성명에서 “현재로선 환율이 크게 움직일 상황은 아니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이 성명은 전날과는 달리 중국어로만 돼 있어 국내용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행보에 미국에선 위안화 절상 회의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의 환율 조작을 강하게 비판해 온 민주당 찰스 슈머 의원은 “중국이 발표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을 보면 회의론자의 지적이 옳았다”며 “중국의 환율 조작을 규탄할 법안 마련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BMO 캐피털 마켓의 셰리 쿠퍼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중국의 환율 유연화 선언은 이번 주말 주요 20개국(G20) 토론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제사회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제스처임이 확인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G20 회의에서 위안화가 도마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중국이 먼저 환율 유연화 선언을 했으나 미국의 기대만큼 신속하고 과감한 절상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위안화 절상 폭이 애초 기대보다 훨씬 작을 것이란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블룸버그가 인민은행의 환율 유연화 발표 직후 국제 애널리스트 14명을 대상으로 긴급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달러에 대한 위안화 가치는 연말까지 1.9%(중간치 기준) 오르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 재정위기로 유로화에 대한 위안화 가치가 올 들어 16.5%나 상승했기 때문이다. 유럽이 중국의 최대 수출시장임을 감안하면 위안화를 절상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투자은행 CLSA 상하이 지점 앤디 로먼 전략가는 “유럽 재정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위안화는 고작해야 한 달에 0.2% 절상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중국의 변명 … “외국에서 확대 해석”

중국의 환율정책을 바라보는 해외 시각이 이틀 만에 거의 180도 돌변했다. 낙관론에서 회의론으로 돌아선 것이다.

값싼 중국 공산품은 옛말이 됐다. 중국은 이제 첨단 장비 분야에서도 빠르게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이유다. 실력에 맞게 통화의 가치를 조정하란 의미다. 사진은 중국의 탕에너지그룹이 제작한 풍력 발전기의 몸체와 날이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의 롱비치항에 도착한 모습. [롱비치 블룸버그=연합뉴스]

환율 결정 시스템을 개혁하고 환율 탄력성을 키우겠다는 발표(19일 밤)가 나온 지 이틀 만인 21일 중국외환교역센터가 은행 간 환율을 지난 주말과 같은 달러당 6.8275위안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상에 대한 국제적인 기대감에 찬물을 쏟아붓는 모양새가 됐다.

중국에 오래 거주해 온 한 기업인은 “중국인들은 어지간해선 극단적인 화법을 피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중의적 표현을 즐겨 쓴다”며 “이번에도 중국 당국의 함축적인 발언을 외부 세계가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인민은행의 환율 개혁과 탄력성 증대 발언은 당초 어떤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베이징의 한 금융 소식통은 “환율제도 개혁과 위안화의 탄력성 강화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 중국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주장하고 추진해 온 중장기 과제”라며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큰 폭의 절상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외부의 압력에 의한 위안화의 인위적 절상에 대한 중국 정책당국의 거부감은 여전하다. 실제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중국 외교부 주선으로 18일 열린 외신 설명회에서 장타오(張濤) 인민은행 국제국장은 “중국은 자체 사정에 맞게 위안화 환율 정책을 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민은행의 위안화 개혁 발언 하루 전이었다. 그럼에도 인민은행이 민감한 시기에 재차 환율 개혁 발언을 공개한 것은 국내외적으로 노림수가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후 주석이 참석하는 G20 정상회의에서 위안화 절상이 이슈화되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국내적으로는 위안화 절상을 산업 구조조정 기회로 삼겠다는 적극적인 계산도 깔려 있다고 중국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인민은행 대변인은 “환율 개혁이 이뤄지면 단순 임가공 수출보다는 고부가가치 수출이 증가하고 내수 서비스 산업이 활성화돼 국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씨티은행 중국지역본부 선밍가오(沈明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개혁 발언을 통해 중국 지도부는 시간과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경제 구조조정과 경제성장 방식의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풀이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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