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반시장적 협박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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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 기자는 이사회가 잇따라 열린 LG화학과 LG전자의 사무실을 돌았다. LG카드 채권단이 LG화학.LG전자 등에 대해 "LG카드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한 데 대해 두 회사의 이사회가 논의한다고 해서다.

증권 시장에서는 많은 애널리스트가 "정부와 채권단의 전방위 압박에 LG가 손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사회가 내린 결론은 반대였다. 채권단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LG 이사회의 주장은 이렇다.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지난 1월 정부 주재로 LG카드 채권단과 LG그룹 간에 담판을 지었다. 이때 LG그룹은 LG카드를 털어내는 조건으로 LG카드에 수천억원을 지원하고, 카드뿐 아니라 증권 등 금융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 이런 뼈아픈 대가를 치르고 LG카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 와서 당초 계약에 없던 추가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LG카드 채권단은 LG카드의 부실이 당시 예상보다 커 정상화가 늦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자칫 정상화가 안 되면 LG카드를 청산해야 하는데 이 경우엔 채권단은 물론 LG카드에 거액의 채권을 갖고 있는 LG 계열사들도 큰 손해를 본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LG그룹이 미리 도와주는 게 양쪽에 이득이 될 것이란 입장이다.

물론 카드 부실의 원죄는 LG에 있다. 그래서 LG는 요즘 공개적으론 하소연도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다. 그럼에도 LG는 채권단의 요구에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제 전문가들도 정부와 채권단이 무리수를 둔다고 지적한다. "카드 부실이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니 대주주였던 LG가 모른 척해선 안 된다는 논리는 반시장적"이라는 것이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정부가 시장질서를 무너뜨리는 협박을 한다"며 "LG가 출자 전환을 수용하면 오히려 주주 소송감"이라고 지적했다.

이원호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