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 당당'춘향 구도자 황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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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예부터 만인의 연인이었던 춘향과 황진이를 새롭게 조명하는 연극 두편이 화제다.

국립극단이 9~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기생비생 춘향전'은 중진 극작가 겸 연출가 오태석의 신작이다. 오씨는 고전 속 인물의 재해석에 관심을 갖고 이미 심청·이춘풍 등을 공연했으나 춘향에 도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비틀기'의 요체는 춘향을 당대 봉건적인 유습에 당당히 맞선 줏대있는 여성상으로 그린 점이다. '기생비생(妓生非生)'이란 '기생이면서 기생이 아니다'는 의미로 오씨가 만든 말이다. 드라마는 월매와 춘향의 대립구도로 짜였다. 월매(권복순)가 규율과 규범, 사회적인 굴레의 틀에 갇힌 수동적인 인물이라면 춘향(남유선)은 스스로의 잣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특히 춘향이 당대 양가집 규수의 일반적인 모럴이었던 '수절'을 감행한 것이야말로 주체적인 탈(脫)기생의 몸짓이라고 작가는 해석했다. 02-2274-3507~8.

사물놀이 한울림의 '나비야! 저 청산에'(12~1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는 조선 명기 황진이 이야기다. 그러나 서경덕·지족선사와의 연애담 대신 '자연인 황진이'를 진지하게 탐구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가치가 엿보인다. 작가(김영무)는 "서녀(庶女)에서 기녀로, 기녀에서 다시 자연인으로 탈바꿈하며 고행하는 황진이에게서 구도자의 영혼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말년 그녀의 금강산 순례를 노장사상에서 비롯된 자연귀일(自然歸一)의 전형으로 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극은 전통무용과 창작무용, 전통음악과 퓨전음악, 그리고 드라마가 결합한 '한국적인 토털 시어터'를 내세운다. 한울림은 1994년 이와 비슷한 컨셉트의 '영고'를 만들며 얻은 노하우를 신작에 쏟았다. 강영걸 연출, 김덕수 음악, 손정아 안무·주연. 손씨는 20여년간 미국에서 활동한 재미무용가다. 02-762-7300.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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