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경영권 방어는 정당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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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들어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우량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례가 부쩍 잦다. 대표적 외국계 펀드인 헤르메스는 삼성물산에 대한 적대적 인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겼다. 그에 앞서 SK는 지난 주총에서 외국계 투기자본 소버린의 공격을 받았다.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스스로 경영권 방어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제도적으로 경영권 방어수단이 갈수록 줄어드는 마당에 기업들이 법적으로 허용된 경영권 방어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정당할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와중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삼성전자의 SK 지분 매집을 두고 재벌기업 간의 부적절한 연합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재벌들이 결속해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경영권 방어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실상을 호도할 우려가 있다.

우선 공개기업의 주식시장이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경영권 찬탈과 경영권 방어가 동시에 상존한다. 주식시장을 통해 공개적으로 기업의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시도가 인정되는가 하면 그에 상응해 경영권을 지키려는 노력도 인정되고 있다. 경영권을 둘러싼 공방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세계 최대의 솔루션 업체인 오라클사가 피플소프트를 적대적으로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피플소프트 경영진은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IBM과 제휴를 했다. IBM을 백기사(우호세력)로 활용한 것이다. 심지어 피플소프트는 회사의 가치를 고의적으로 하락시키는 독약처방(Poison Pill)까지 사용해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결국 피플소프트는 오라클에 넘어갔지만 피플소프트의 경영권 방어행위에 대해 누구도 도덕적 해이와 지배구조 왜곡이라고 문제 삼지 않았다. 이를 법적으로 보장된 기업활동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경영권 방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고, 특히 외국계 언론과 투자펀드들이 이를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이미 경영권을 재산권으로 인정한 바 있으며, 헌법도 개인과 법인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즉 경영권 방어행위는 정당한 재산권 보호행위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경영권 방어행위가 재산권 보호의 범위를 넘어 경제력 집중의 수단으로 악용될 때 법률로 제한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삼성전자의 SK 지분 매입은 경제력 집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순한 재산권 행사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번 삼성전자의 SK 지분 매입은 백기사 역할이 아니라 전략적 지분 매입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설사 삼성전자가 SK 경영권 방어를 위해 백기사 역할을 했다고 해도 역시 비난할 일은 아니다.

이를 두고 한국 재벌들이 결속해 기업 지배구조를 왜곡한다는 일부 외신의 보도와 외국계 투기자본의 비난은 온당치 않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을 찬탈하는 행위에 대해 국내법상 아무런 규제가 없다는 점이다. 여기다가 국내 대기업들이 외국 투기자본에 잠식당하는 게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우량 기업이 한순간에 정체불명의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찬탈되는 것이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일 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기업이 애국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그 기업들이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 스스로 자구적인 방어수단을 동원해 경영권을 지키려는 노력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부도덕한 행위로 몰아세우지는 말아야 한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소송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