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의 자율개혁-법률자문위원회 출범 좌담회> "인권침해 막는 책임언론 지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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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기사로 인한 인권침해 및 명예훼손을 예방하기 위한 중앙일보 법률자문위원회가 3일 출범했다. 이날 오후 강원일(姜原一)법률자문위원장과 김병재(金炳宰)·김성식(金成植)·백창훈(白昌勳)·이건행(李建行)·이춘원(李春源)·하철용(河哲容) 법률자문위원이 본사 대회의실에서 이 위원회의 역할과 바람직한 보도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백창훈=과거에는 언론의 자유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사회가 성숙하면서 화두가 언론의 자유에서 '책임'으로 넘어왔다. 이런 시점에서 중앙일보가 스스로 언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장치로 법률자문위원회를 만든 것은 법률가로서가 아니라 일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기쁜 일이다.

▶김병재=언론 자유에 장애가 되는 요소에 대한 투쟁과 극복의 역사는 사실상 끝났다. 국민이 알아야 할 내용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보도해야 여론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가를 언론사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이 위원회는 언론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막아주는 제도적 장치의 구실을 할 것이다.

▶김성식=언론의 책임있는 보도를 별도의 법으로 규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개별 피해자의 민사소송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 최근에는 해당 언론사뿐 아니라 담당기자를 함께 고소하고, 위자료 액수도 점점 올라가는 추세여서 보도를 할 때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송과 같은 외부적인 규제만으로는 언론의 책임있는 보도를 보장할 수 없다. 기사를 자체 검토하는 등 언론사의 내부적인 규제가 더 중요하다. 법률자문위원회의 도움을 얻어 법적 문제가 없는 기사를 내보냈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소송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춘원=프랑스 혁명 당시 언론에 대한 검열이 없어져 개인의 권익이 침해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반론권(反論權)이 탄생했다. 이러한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언론의 자유는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보도 대상의 권익을 우선하고 만약 보도 때문에 피해가 발생했다면 정정·반론 보도 등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하철용=국민의 알권리와 보도 대상의 인권 침해 문제가 첨예하게 맞부닥칠 때 어느 쪽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같은 사건에 대해 판사와 변호사의 해석이 다르듯이 한 사건에 대해 보도 대상과 취재 기자의 입장이 다를 것이다. 기사를 쓰기 전에 보도 대상의 입장과 그가 볼지도 모르는 피해를 고려하는 데서부터 문제 해결이 시작될 것이다.

▶이건행='신문에 났다'는 말이 '사실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일반인들이 언론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신문은 일회적인 방송과 달리 되풀이해서 읽을 수 있는 매체다. 따라서 오보에 대한 책임이 더욱 크다.

▶강원일=매일 시간에 쫓기면서 넓은 지면을 채워야 하고, 다른 언론사보다 먼저 재미있는 기사를 쓰려고 하는 신문의 속성상 오보의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불필요한 특종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 내일 10시에 발표될 사실을 9시에 먼저 쓴다고 해서 특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묻혀진 사실을 밝혀내 수사하도록 하는 게 진정한 특종이다.

▶백창훈=기자는 특종을 하려고 애쓰지만 실제 독자는 어느 언론사가 특종을 했는지보다는 어떤 보도가 더 정확하고 유익한가를 중시한다. 다소 늦더라도 공정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보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건행=정치인이 다른 정치인을 비방한 것을 신문이 그대로 실어 '설(說)'이 사실처럼 알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문을 속보로 보도하지 말고 그 설의 진위를 검증해 허위일 경우엔 질타하는 보도 자세가 필요하다.

▶강원일=추측성 기사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이 사생활 관련 보도다. 사건 관련자가 식사를 함께 한 사람, 통화를 한 인물 등 마치 모든 주변 사람들이 해당 범죄와 관련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사들이 종종 있다. 통화 당사자 등 해당 인물들이 일일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많은 소송에 휩싸일 것이다.

▶이춘원=그러나 명예훼손 소송을 우려해 보도를 자제해서도 안될 것이다. 16대 총선 때 총선연대의 낙천 운동은 중요한 보도 사안이었지만, 해당 후보들에게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여지가 있어 각 언론사에서 보도를 망설였다. 당시 중앙일보는 법률적 검토를 거친 뒤 총선연대 측의 부적격 사유와 함께 당사자의 반론을 글자수까지 맞춰 균형있게 보도했다. 그 결과 시민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사회에 알리면서도 명예훼손 시비를 피할 수 있었다. 법률자문위원회는 이처럼 사실 보도와 인권 보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중앙일보의 '지면 지킴이'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리=구희령 기자

<법률 자문위원 약력>

◇강원일(姜原一·60)

▶대검찰청 형사제2부장▶인천지검 검사장▶제3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수사담당 특별검사▶(현)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하철용(河哲容·53)

▶대전지법 천안지원장▶사법연수원 교수▶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현)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김병재(金炳宰·51)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서울고등법원 판사▶(현)방송위원회 재심의위원회 위원▶(현)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백창훈(白昌勳·45)

▶서울고등법원 판사▶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장▶사법연수원 교수▶(현)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이건행(李建行·41)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자문위원▶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현)한백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김성식(金成植·37)

▶인천지방법원 판사▶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현)법무법인 우방 변호사

◇이춘원(李春源·36)

▶중앙일보 법률담당 전문기자▶(현)법무법인 세경 변호사▶(현)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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