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비밀이야 연봉제 확산… 커지는 격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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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국내 업계에 연봉제·성과급제가 확산하면서 입사 동기라도 연봉이 몇배씩 차이 나는 현상이 자주 생기고 있다. 급여의 연공서열 관행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멀티미디어 기기 전문회사인 ㈜현대오토넷의 경우 직원 5백명 중 10%가 상위 직급자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

올 1월부터 연봉제를 실시한 이 회사는 직급이 같더라도 기본급이 다르고 성과급은 4백~1천2백%까지 다양하다. 직급이 낮아도 성과급을 많이 받아 상사보다 더 많은 연봉을 챙기는 직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유광원 이사는 "개인의 역량을 향상시키고 우수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봉제를 도입했다"며 "이전보다 전체 임금은 오히려 늘었다"고 말했다.

◇직급 따로 연봉 따로=한국타이어는 직무등급을 14단계로 세분해 연봉을 지급하는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사고과와 어학점수 등을 합쳐 직무등급을 정하고, 여기에 따라 연봉을 주는 제도다. 연공서열에 의한 밀어주기식 승진과 규격화된 급여체계를 폐기한 것이다.

직원들의 사기를 감안해 근무연수에 따라 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호칭이 올라가지만 이는 대외용에 불과하다.

시스템 통합(SI)업체인 LG-CNS는 지난 1일 호봉·직급을 무시하고 성과로만 급여를 정하는 완전연봉제를 시작했다. 지난달 하순에는 40대 부사장과 30대 상무를 탄생시켜 연령 파괴를 선언했다.

연봉은 연공서열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책임감은 별로 안 따진다. 실적이 가장 확실한 잣대다.

일반관리직도 실적을 따져 연봉을 매기는 곳이 늘고 있다.

노동경제연구원의 2000년 조사 결과를 보면 호봉표를 없앤 기업이 11.9%다. 상하 관계도 예전과 다르다. 제일제당은 2년 전부터 이름에 과장·부장 하는 직급 대신 '님'자를 붙인다.

직급체계도 단순화하는 추세다.LG전자는 지난해 직급체계를 5단계에서 4단계로 줄였다.

◇연봉 격차 점차 커져=평가기준을 좀더 정교하게 만들어 연봉제를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기업이 늘고 있다. 신입사원의 급여에도 차이를 두겠다는 삼성의 경우는 성과를 중시하려는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무선사업부 소속 과장급 엔지니어 6명은 기술혁신과 특허 등에 대한 공로로 올초 1억5천만원을 받았다.

생산성 격려금(PI)과 이익배분(PS)을 합치면 직급이 같더라도 연봉이 다섯배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이 회사의 윤종용 부회장 등 사내 등기이사 7명의 지난해 보수는 1인당 평균 36억7천만원에 달했다.

삼성의 다른 계열사는 물론 웬만한 대기업 사장이 받는 연봉의 10배 이상이다. LG전자는 지난해 8월 연봉제를 전사원으로 확대하면서 같은 직급이라도 연봉이 두배까지 차이 나도록 했다. 포항제철은 동일 직급 내 연봉차를 8.9%에서 올해 13.5%로 확대했다. 과장급의 연봉격차가 지난해까지 3백90만원이었으나 올해는 6백만원까지 커지게 됐다.

이랜드는 지난해 말 의류 브랜드별로 실적을 평가해 성과급을 4백50%에서 1천1백%까지 차등 지급했다.

◇중소기업까지 번져=연봉제는 더 이상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기업과 중소기업들도 연봉제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지난해 12월 1천개 중소 제조업체를 조사한 결과 19.2%가 연봉제를 실시한다고 응답했다. 1년 전보다 3.8%포인트 높아졌다. 문구업체 바른손은 이달부터 본사 직원 80여명을 대상으로 연봉제에 들어갔다. 같은 직급내 연봉 격차를 30%까지 둘 계획이다.

김상우·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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