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부장판사 승진·발탁인사는 평등권 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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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현직 부장판사가 현행 법관 인사제도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서울지법 민사28부 문흥수(文興洙·사진)부장판사는 6일 "지방법원 부장판사 가운데 일부만을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발탁·승진시키도록 되어있는 대법원 규칙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文부장은 청구서에서 "현행 인사제도는 헌법의 행복추구권·평등권·인격권·공무담임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이 제도는 식민지·군사독재 시대의 유물로 고분고분한 판사만 양성해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법관 인사제도에 대해 법원 내부 통신망을 통한 문제제기는 있었으나 현직 부장판사가 공론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文부장 주장=한정된 인원만 고법부장으로 승진시키다 보니 판사들이 평소 인사 평가자인 법원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판사가 처리한 사건의 파기율 등 구체적 사실에 입각해 능력 등을 평가하고 당사자에게 평가에 대한 반박 기회를 제공하는 인사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고법부장과 지법부장의 차별을 없애 승진에 누락돼도 법복을 벗지않고 판사로 남을 수 있도록 정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법관의 평균연령이 40세에 미달하고 법원이 변호사 양성소라는 비난이 있는 것도 승진에서 탈락하면 퇴직해야 하는 잘못된 인사제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관 임관 후 22년쯤 지난 지방법원 부장 가운데에서 발탁한다. 文판사는 "법원 스스로 인사제도를 민주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기대할 수가 없어 헌법소원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법조계 반응=법관의 인사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文부장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라고 반박했다. 한 해에 1백50명 정도가 판사로 임용되는데 20여년이 지난 뒤 한해에 10자리 정도밖에 나지 않는 고법 부장으로 전원 승진시킬 수는 없어 인력 운영상 발탁 승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판사들이 재판과정에서 외부나 상층부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제도가 아닌 법관 개인의 양심과 소양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설사 눈치를 본 판결이 있더라도 상급심에서 뒤집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朴모 변호사는 "승진을 앞둔 판사들이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은 사실"이라며 "순환 보직제 등을 통해 모든 판사들에게 승진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해야 능력있는 판사들이 법원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文판사=1976년 사시21회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군법무관을 거친 뒤 84년 판사에 임용됐다. 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 당시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지난해에는 판사 33명과 함께 사법부 개혁을 위한 법관공동회의를 발족하기도 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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