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세계에도 사랑과 질투 있다 SBS다큐 '곤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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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작은 체구의 광대파리는 지참금이 있어야 장가를 갈 수 있다. 암컷에게 식물즙이나 배설물 등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상대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2.암컷 모시나비는 단 한번의 짝짓기 후 정조대를 차야 하는 비운의 운명을 타고났다. 짝짓기를 한 수컷이 암컷에게 정절을 강요, 끈끈한 점액으로 생식기를 막아버리는 연유에서다.

선물이 오가는 파리의 현대적 로맨스, 나비들의 투철한 정조 관념….

우리가 하등동물로 치부하는 곤충들의 세계에도 사랑·질투·배신·투쟁 등 인간사와 닮은꼴의 행위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SBS 특집 자연 다큐멘터리 '곤충, 그들만의 세상'(6일 밤 10시50분)에서는 한 곤충학자가 5년간 전국을 누비며 촬영한 곤충들의 은밀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수많은 자연 속 생명체들 중 75%를 차지하는 곤충. 세계적으로 약 3백만종, 우리나라에는 1만여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 집단이지만 인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카메라는 이들의 삶과 죽음, 사랑을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인간보다 먼저 뿌리내린 그들만의 사회성을 주목한다. 1억년 전부터 손가락만한 호리병을 만들어 애벌레를 키운 곤충에 비해 인간은 지금으로부터 2만년 전에야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었다. 작은 존재지만 인간보다 우월한 면도 있다는 방증이다.

하트 모양으로 사랑을 나누는 잠자리,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숫사슴벌레, 자식을 위해 사람 손바닥만한 크기의 요람을 만드는 거위벌레 등의 모습도 소개한다.

이번 촬영을 주도한 고려곤충연구소장 김종환씨는 "알이 부화해 기다리는데 5시간, 흙으로 집짓는 장면 촬영에 3~4일이 걸릴 정도로 촬영이 힘들었던 만큼 최초로 공개되는 장면도 적지 않다"며 "이 프로그램이 곤충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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