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변강쇠’의 슬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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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분비가 부족해요. 액이 없으니 자꾸 아프다 하고 그러니 저도 느끼기 힘듭니다.”

신혼 1년째인 K씨 부부는 필자를 찾아와 진단이 뒤집힌 대표적인 경우다. K씨 부부는 분비가 부족하다며 여러 곳을 전전했지만, 고작 윤활제를 처방받은 게 전부였다.

K씨의 아내는 성행위 시작 때부터 분비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진료를 해봤더니 분비 기능은 정상이었다. K씨 아내는 성행위가 20분 이상 지속될 때 점점 분비력이 줄어들었다. 정상적인 여성도 장시간 성행위를 하면 분비가 지속되지 못할 수 있다. 상황을 짐작한 필자는 K씨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K씨는 단 한번도 질내 사정을 해본 적 없는 지루 환자였다.

“자위 때는 사정이 되는데, 지루 환자라구요.”
대부분 지루 환자들은 성행위 시에 사정이 되지 않지만 자위 시에는 잘된다. 그래서 K씨처럼 문제가 없다고 버티는 경우도 많다. 자위할 때조차 사정이 안 되는 경우는 중증 당뇨나 척수신경의 손상으로 완전히 사정 기능을 잃은 사정장애일 가능성이 높다. 남성호르몬의 저하와 성기능의 쇠퇴로 과거에 되던 사정이 안 되기도 한다. 이들은 일반적인 지루 환자와 다르다.

“오래 하는 것이 남자로서 좋은 일인 줄 알았고,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오래 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지루 환자들은 K씨처럼 ‘오래 해야 한다’는 성적 완벽주의가 있거나 평소 감정 표현이 서툴고 심리적 억제를 가진 경우가 많다.

또 여성에게 무의식적인 두려움·적대감이 있거나 정신분석학적으로 아내를 어머니와 동일시해 성 흥분이 억제되기도 한다. 치료에 있어서도 심리적 억제와 성 흥분이 최고조까지 이르지 못하고 억제되는 부분을 고도의 심리적 분석치료와 성 흥분에 적응시키는 성치료를 병행해야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

치료의 난이도가 높다 보니 성기능장애를 그저 성기 문제로 다루는 평범한 치료자는 지루 치료에 혀를 내두른다. 심지어 치료자로서 능력 부족은 반성하지 않고 지루는 치료가 안 된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 환자를 절망에 빠뜨린다. 하지만 치료가 안 된다는 것과 치료자가 치료법을 모른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자화자찬이지만, 필자의 진료실에서는 지루환자 중 3분의 2 이상 자연사정으로 완치되는 놀라운 치료성공률을 보여 필자는 성의학자로서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흔히 남성들은 지루보다는 빨리 사정하는 조루 문제를 더 걱정한다. 조루는 유병률이 20~30%로 흔하지만, 지루는 1~4%에 불과하다. 흔치 않은 질환이기에 지루 환자의 고통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일반 남성들은 오래 하면 좋은 거 아니냐며 변강쇠가 부럽다고 착각한다.

정상 남성의 평균 삽입성행위 시간은 5분이며 길어도 10분이다. 매번 한 시간씩 삽입성행위를 한다는 남성들은 허풍이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실제로 그렇게 오래 하기를 원하는 조루 환자들에게 조루치료제로 사정시간을 대폭 늘려 15분 이상의 성행위를 시켜보면, 그들은 그제야 차라리 오르가슴을 느끼기라도 하는 조루가 지루보다는 낫다는 것을 깨닫는다. 흔히 오래 하는 것이 대단한 정력가이고 변강쇠인 것처럼 부러워하지만, 너무 오래 하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고역일 뿐이다.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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