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뱅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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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33면

조(兆) 달러 단위의 거대 자산을 갖고 글로벌 영업을 하는 메가뱅크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 말이었다. 제조업 쪽에서 50년대에 초대형 다국적기업들이 탄생했던 것과 비교하면 반 세기 가까이 뒤진 일이었다. 15세기 이후 근대 은행의 역사를 보면 세계 각국 정부는 은행이 비대해지고 많은 일을 벌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은행 특유의 공적 기능 때문에 자칫 사고가 일어나면 정부가 국민 세금을 투입해 뒤치다꺼리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항상 정부 규제의 그늘 아래서 조심스레 장사해야 했다.

김광기의 시장 헤집기

은행의 대형화와 국제화를 촉발한 것은 뜻밖에도 금융 후진국 일본이었다. 70~80년대 수출 주도 대기업들의 약진으로 경제가 급성장한 일본은 금융업에서도 패권을 잡아보겠다며 은행의 자산 불리기와 국제 업무를 적극 지원했다. 금융 관련 규제들은 과감하게 제거됐다. 무역흑자로 넘치는 외화 자산에다 낮은 금리는 은행들에 날개를 달아줬다. 목적이 달성된 듯했다. 80년대 말 세계 10대 은행 랭킹에 일본계 은행이 절반을 넘나들었다.

다른 선진국 은행들이 반격에 나섰다. 원래 유니버설뱅킹(은행과 증권업 겸영) 시스템으로 규제가 덜했던 유럽 은행들은 중동의 오일머니를 끌어들이며 대형화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초대형 은행을 의미하는 메가뱅크란 말은 98년 미국 씨티은행과 트래블러스보험이 합병한 씨티그룹이 탄생하면서 쓰이기 시작했다. 앞서 씨티는 미 대형 은행들을 대표해 정부에 규제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일본과 유럽 은행들의 성장을 목격한 미 정부는 국익 차원에서 규제를 풀기 시작했고, 결국 99년엔 금융규제의 상징이었던 글래스-스티걸법(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업 겸영 금지)을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2000년 들어 미국과 유럽 은행들 사이에선 메가뱅크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한 메가 인수합병(M&A)이 러시를 이뤘다. 그 틈바구니에서 일본 은행들은 급속히 침몰했다. 자국 경제의 거품 붕괴도 문제였지만, 애당초 덩치만 컸지 금융의 기본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미국·유럽 메가뱅크들의 영화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결정타였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야기한 장본인이란 지탄을 받았고,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각국 정부는 국제공조를 통해 금융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에선 지금 때 아닌 메가뱅크 논의가 한창이다. 어윤대 KB금융 회장 내정자가 우리금융·산업은행 등과의 합병을 통해 세계 50위권 은행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다. 선진국 메가뱅크들이 숨죽이고 있을 때가 우리에겐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은 실력이다. 무리하게 덩치만 키워 큰 사고라도 내면 뒷감당은 결국 국민 몫으로 돌아오고 만다.

메가뱅크 만들기가 금융 CEO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한 이벤트로 흐르지 않을까 시장은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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