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엔 땀내 나는 장군복, 흙 묻은 장군화가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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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08면

이진규 예비역 해군 대령이 16일 “군개혁에서 ‘장군의 쇄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천안함 사태의 후폭풍으로 군 개혁이 화두로 등장했다.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아직 내용은 선명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 ‘장군의 쇄신’이 핵심 과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진규(50·해사 30기) 예비역 대령, 2005년 하와이 림팩 훈련에서 ‘장보고함의 유령 함장’으로 다국적 전함을 겁줬던 그가 이제 ‘군 개혁’의 필봉을 휘두르고 있다. 2006년부터 영국 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며 마음에 담았던 개혁에 관한 생각을 2009년 말 전역한 뒤 쓰기 시작, 19일 『국방 선진화 리포트』(작은 사진)로 담아 출간했다. 전역 직후의 글이라 현역의 내부 고발 같은 분위기도 담겨 있다. 그가 주제로 꼽은 ▶계급 거품 없애기 ▶업무 공간 개방 ▶조직구조 개편 ▶합동·통합성 강화는 외부인이 알기 힘든 내용도 담고 있다. 그래서 내용 없는 군 개혁에 실체를 줄 수 있어 보인다. 그를 만나봤다.

‘장군의 쇄신’ 주장하는 전 장보고함 ‘유령함장’ 이진규 예비역 대령

-왜 장군이 쇄신의 타깃인가. 군의 핵심은 장교와 사병이 아닌가.
“장군이 제일 중요하다. 장군의 어깨에 수천, 수만 명이 걸리고 경우에 따라 국가 전체가 좌우된다. 장군 계급에 끼어 있는 거품만 제거해도 군 개혁의 50%를 달성할 것이다.”

-책에서 ‘땀내 나는 장군복이 없다’는 지적을 했다. 어떤 맥락인가.
“정확히는 ‘땀내 나는 장군복, 흙 묻은 장군화가 없다’는 것이다. 장군복에 땀이 안 배고 군화에 흙이 안 묻으면 현장에 안 간다는 의미다. 지금의 육군뿐 아니라 해군도 마찬가지다. 병사들은 직접 걷고 파고 포복하면서 전투를 수행한다. 장군들은 병사들에게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목숨을 담보로 전쟁을 해야 하는 병사들은 ‘번쩍번쩍한 차를 타고 사병이 닦은 광 나는 군화를 신은 장군이 내 실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현장 병사들의 모습을 정확히 봐야 신뢰를 준다. 아래에서 전화로 보고받고 “그래, 그래” “어, 어” 해선 안 된다. 그러니 천안함 같은 사태가 발생하고 깨지지 않는가. 장군은 폐쇄조직에서 철밥통 혜택을 누린다고 말하고 싶다. 금테 두른 철밥통이다. 나는 열 번 싸우면 열 번 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장군의 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것 같다.
“미 태평양 사령부를 보라. 한국의 1개 육군 군사령부엔 13명의 장군이 있는데 태평양 사령부는 7명이다. 태평양 사령부는 지구 면적의 53%를 40만 병력으로 관할한다. 또 우리 합참의장 밑에는 군사령관·군단이 있다. 별 넷 군사령관이 별 넷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는다. 별 넷이 별 넷의 지휘를 받아야 하나. 별 둘(소장)이면 안 되나. 별 밑에 별이 너무 많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장군이 장군의 지휘를 받으며 늘어서 있다.”

-천안함에도 그런 일이 보였던 것 같다.
“맞다. 어뢰 피격은 지체 없이 합참의장에게 보고돼야 대책이 수립된다. 그렇게 되지 못한 데는 장군 수가 많은 것도 한 이유다. 본부장 -작전부장-작전처장 식으로 장군이 길게 뻗어 있다. 건군 60년이 지나면서 수천 개 사건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보고 때문에 지적받은 게 수천 번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상황실장이 바로 합참의장한테 직보하는 체계가 안 돼 있다.”

-왜 장군이 많아졌다고 보나.
“전체 병력 대비 장군 몇 명 혹은 하부 조직 몇 개에 상부 조직 몇 개 식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장군은 회사로 치면 경영진이다. 그 수는 업무 분석을 통해 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현재 440명 장군을 20% 정도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다.”

-개방형 장군 사무실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업무 공간의 개방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국 국방부의 준장·소장에겐 방도 없다. 오픈된 공간에서 파티션만 가려 있다. 대장에게만 유리벽으로 된 방이 제공된다. 유리벽은 일을 하라는 뜻이다. 장군이 지금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보고 바로 접근하게 하는 것, 즉 접근성과 상호 감시의 중요성이 반영돼 있다. 아랫사람의 감시도 받게 하는 것이다. 부정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도 없앤다. 미 국방부나 태평양 사령부 대부분 장군 사무실이 유리벽으로 돼 있다. 한국은 어떤가. 별만 되면 다 가려진 독방이 제공된다. 그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비상이 걸려도 지휘관이 있는지 알 수 없다. 한국의 대부분 장군은 어떤 형태로든 저녁 자리가 있는데 매일 그러면 오후에 피곤할 것이다. 내실 있겠다. 거기서 어떻게 이완되는지는 장군만이 안다.”

-장군 개혁이 50%라 그랬으면 나머지 50% 개혁은 어디서 찾는가.
“조직 개혁이다. 관료화 조직을 업무형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 업무형이 아니라는 것인가.
“선진국 장군들은 자기 일을 직접 한다. 예를 들어 영국 국방부 내 군사 전략부의 업무 절반은 전략부장이 한다. 직접 초안을 만든다. 한국의 부장은 의사 결정을 주로 한다. 전에는 상황을 하루나 일주일로 따졌지만 오늘날은 분초다. 이 때문에 지휘관이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예고와 시나리오 없이 시작되는 전쟁이나 국가적 비상은 템포가 분초다. 그런 때는 작전을 끌어가는 사람, 즉 의사 결정자가 직접 작전을 짜야 한다. 참모들은 그 사람의 손발일 뿐이다. 한국에선 거꾸로다. 아랫사람들이 장군의 머리가 된다. 시켜서 가져오면 보고, 다시 시킨다. 의사 결정에만 익숙하면 비상
상황에 또 아랫사람을 불러야 한다.”

-개인 문제 아닐까.
“아니다 관료화된 분위기가 국방조직 전반에 만연돼 있다. 큰 문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직접 일하는 조직 혁신이 필요하다. 의사 결정을 담당한 고위 계급이 직접 일하는 게 군사 선진국이다.”

-한국군의 육·해·공 3군의 분열을 영국과 비교하면 어떤가.
“한국에는 국방부와 합참이 국방부 내 딴 건물에, 육·해·공 사령부는 대전에 있다. 조직이 떨어져 있으면 제도와 절차도 따로며 복잡하다. 영국에선 한 건물 안에 들어가 있다. 기능도 통합돼 있다. 영국 국방 개혁사는 각군 본부를 없애는 과정이었다. 영국은 이미 1964년 각군 본부를 폐지하고 통합국방 조직을 만들었다. 각 군사령관은 국방장관과 국방 참모총장의 참모장일 뿐 직접 지휘권은 없다. 참모총장은 모병이나 중요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정도다.”

-우리의 모델인 미국 방식은 문제인가.
“미국의 육·해·공군은 하나 하나의 규모가 크고 독립적인 측면이 크다. 전문화된 육·해·공 본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전장의 크기를 미국을 축구공이라 하면 우리는 깨알의 반쪽도 안 될지 모른다. 축구공은 어느 정도 나눠 전문화시킬 필요가 있겠지만 깨알을 쪼개는 건 문제다.”

-천안함에는 통합성의 문제가 어떻게 작용했다고 보나.
“천안함은 해군 사건인데 지휘체계는 육군 중심이다. 해군 제독조차 즉각 어뢰 피격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육군을 어떻게 이해를 시키겠나. 현재의 합참 군령권과 각군 본부의 군정권을 분리해놓은 것도 전시에 지휘체계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음이 천안함 사태에서 드러났다. 본부가 인사권을 갖고 있으니 합참 근무 장교들은 각군 본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합참의장이 ‘눈치보지 말라’고 장교들에게 경고했을 정도다.”

-통합을 얘기하면서 3군사관학교 통합은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
“생도에게 통합성을 교육한다는 것은 유치원생에게 대학원 교육을 가르치는 격이다. 파벌 형성을 막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군을 분열시킨 하나회나 알짜회 같은 사조직은 육군에서 발생했다. 장교집단의 단결을 저해하는 큰 요인 중 하나는 순혈주의와 엘리트주의다. 특정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독점하는 것이 그렇지 못한 대다수 장교에게 피해를 주며 단합을 저해하는 것이다. 사관학교를 2년제로 하는 방안도 있다.”

-해군 출신이기 때문에 육군에 대한 반발이 심한 것 아닌가.
“아니다. 실제로 현재 국방부와 합참조직의 인적 구성이 육군 위주라는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예하 40여 개의 직할부대 지휘관도 대부분이 육군 출신이다. 예를 들어 국군기무사령관(중장)이나 국방대학원 총장(중장)은 왜 육군만 해야 하나. 한국의 전장 환경은 육·해·공군의 긴밀한 합동체계를 요구한다.”

-육군이 왜 내놓지 않는다고 보나.
“밥그릇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계급에 끼인 거품과 지위의 혜택에 연연해서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현역뿐만 아니라 국방부 산하조직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 해군과 공군을 포함하는 조직을 만들어 육군이 독점해 버린다.”

-책에서 국방부가 말을 아끼라는 지적은 왜 했는가.
“국방부와 각군은 ‘철통 같다. 물샐 틈 없다. 세계 최고, 최강’ 등 홍보성 발언을 쏟아내다 정작 일이 터지면 침묵해 버린다. 단기 성과를 과시하면서 실망만 주게 된다. 오죽하면 국뻥부라는 오명이 있나.”

-국방 개혁의 목표를 무엇으로 잡고 있나.
“국민이 믿을 수 있는 군이 목표다. 당장 여론조사 하면 국민의 몇%가 우리 군을 믿고 있을까. 최종적인 목표는 군이 국가적 비상사태나 전쟁에 제대로 대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장군 계급이 가장 중요한 개혁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진규 예비역 대령은 책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국방 개혁 운동까지 벌일 예정이다. 이미 인터넷에 국방선진화 국민포럼도 만들었다. 여기에 모인 국민의 의견을 군 개혁의 동력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이다. 주소는 blog.daum.net/newdefenc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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