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 王仁박사 유적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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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아름다운 사람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향기가 묻어납니다. 중앙일보는 '길따라 맛따라'섹션을 새로 제공하면서 역사 속 인물들의 현장을 찾아 그들의 발자취를 음미하는 연속 기획을 시작합니다.

편집자

'귀국의 문화는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8세기에 편찬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경제에 밝은 백제의 왕인(王仁)박사가 일본에 건너와 오우진(應神)천황의 태자를 가르쳐 태자가 여러 전적(典籍)에 통달하게 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국빈 방문 중 열린 공식 만찬에서 일본의 아키히토(明仁)왕이 읽은 만찬사의 일부분이다.

일왕은 68회 생일을 맞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을 열고 '나 자신과 관련해 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和新笠)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적혀 있어 한국과의 연(緣)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찾아 유일하게 참배하는 곳이 바로 전남 영암군 왕인 유적지다. 매년 왕인 문화축제 기간 중 6천여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왕인 유적지를 참배하러 온다. 이들에게 있어 백제가 낳은 박사 왕인은 아스카(飛鳥)문화의 비조(鼻祖)로 일본 문화를 꽃피운 역사적 거인이자 학문의 스승인 것이다.

1천6백여년 전인 백제 아신왕 14년(405년) 음력 춘2월. 꽃비가 내리는 화사한 봄날이었다. 돌정고개를 지나 백제의 무역항이었던 상대(上臺·지금의 영암 성기동)포구로 향하는 왕인박사의 발길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33년간 생활했던 성기골, 월출산의 문필봉·죽순봉, 부모님을 합장한 무덤을 떠올리며 3~4년 후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은 했건만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주민들이 배웅하는 가운데 가족과 단야공(鍛冶工·대장장이), 오복사(五服師), 양주인(釀酒人), 도기공(陶器工) 등 2백여명의 백제인이 대여섯척의 배에 나눠 타고 상대포구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못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를 전수함으로써 글과 문장의 스승이 되었으며 일본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국인으로 이름을 길이 빛내고 있다. 『속일본기』에는 서문(西文)·무생(武生)·장(藏)·선(船)·진(津)·갈정(葛井) 등 6개 성씨(姓氏)가 왕인의 후예이고 이들은 일본 사회의 지도계층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왕인의 업적을 기리는 문화축제가 오는 6일부터 나흘간 영암군 왕인유적지 일원에서 열린다.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초빙돼 가는 행렬을 재현한 '왕인박사 일본가오'를 비롯해 백제춤사위, 가야금 산조와 병창, 장부질 노래, 여석산 쌍패농악 등 공연이 벌어진다. 백제문화와 왕인 박사를 주제로 한 난타와 품바타령도 선보인다.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천자문 도전 게임과 닥종이 천연염색 공예체험 한마당도 펼쳐진다.

왕인 유적지에는 사당, 생가터, 맑은 샘물이 흐르는 성천(聖泉), 영암 읍내와 월출산이 가까이 보이는 팔각정 전망대를 비롯해 10여분 거리에 왕인박사가 배우고 담론을 나누던 문산재(文山齋)와 양사재(養士齋), 홀로 조용히 공부하던 석굴과 박사를 조각한 석상 등이 흩어져 있다. 상대포구도 보존돼 있다. 자세한 정보는 왕인문화축제 홈페이지(www.wangin.org)나 전화(061-473-1878)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한일문화친선협회가 펴낸 『학성(學聖)왕인박사』라는 책도 참고가 된다.

이밖에 목포에서 영암으로 이어지는 70리 도로변에는 벚꽃이 탐스럽게 피어 꽃구경도 같이 즐길 수 있다. 백제 토기의 메카인 영암도기문화센터(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061-470-2566)에서는 '도기(陶器)의 멋과 상차림'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영암=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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