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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축구 도박' 극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요즘 홍콩에 축구 도박이 한창이다. 세계 최대의 경마 도박지인 홍콩이 월드컵이라는 '황금 이벤트'를 놓칠 리 만무하다.

홍콩에선 경마를 제외하곤 모든 도박이 불법이지만 홍콩인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술집·오락실 등에서 축구경기를 TV로 보면서 돈을 거는 '현장 도박'이 성행이다.

부활절 휴가가 시작되던 지난달 29일 밤. 주룽(九龍)반도 침사초이(尖沙咀)의 한 뒷골목에 있는 스쿠너(사진)라는 맥주집 출입문에는 '오후 10시 뉴캐슬 대(對) 에버튼'이라는 알쏭달쏭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대형 TV로 유럽의 빅 게임을 생중계한다'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영국 프로축구 리그의 시합을 놓고 도박을 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문구였다. 스탠드바와 4~8명이 앉는 열두개의 테이블은 이미 손님들로 꽉 들어찬 상태였다.

실내에는 60인치 가량의 대형 스크린과 여섯대의 TV가 걸려 있었다. 손님들은 경기를 지켜보며 환호성을 올리거나, 담배를 꺼내 물고 침통한 표정을 짓거나,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등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였다.

홍콩 경찰은 축구 도박을 하는 사람이 40만명, 도박 규모가 2백억 홍콩달러(약 3조4천억원)를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현장 도박' 외에 인터넷을 통한 도박도 흔하다. 인터넷 뱅킹을 통해 도박조직이 개설한 계좌로 판돈을 송금하는 방식이다. 배당금도 인터넷으로 받는다.

이런 불법 도박은 트라이어드(三合會)·14K 등 이른바 '흑사회(黑社會·폭력조직)'가 주무르고 있다. 주선료 명목으로 판돈의 5~15%를 가져가는 것은 물론 노름 밑천을 대주고 고리(高利)를 챙기거나 술집 영업 수입의 일부를 상납받기도 한다.노름 빚을 갚지 않을 경우 폭력·살인까지 서슴지 않는다.

결국 홍콩 경찰은 조직폭력반·정보과·인터넷 범죄반 등 1천여명을 총동원해 특별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단속 효과는 회의적이다. 점조직으로 연결된 도박단을 도려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아예 합법화 얘기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권위지 명보(明報)의 사이먼 풍 편집국장은 "월드컵을 계기로 불법 도박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축구복권 등의 형식으로 축구도박이 합법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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