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신동엽 "우린 주당" 홍록기·김국진 "밀밭만 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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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여의도의 봄은 황사바람에 실려 왔다가 윤중로의 벚꽃이 비장하게 흩날리면 어느 사이 무르익는다. 대개는 이 무렵 봄 방송 개편이 이뤄지는 바람에 여의도 방송가 사람들은 유난히 술자리를 자주 갖게 마련이다. 4월과 10월의 봄·가을 개편을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학기'다. 이런 새 학기에 헤어지는 아쉬움을, 만남의 설렘과 어색함을 술만큼 술술 잘 풀어주는 것도 없다.

대부분의 연예인은 술을 잘 마신다. 방송과 관련한 긴장감과 인기 유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술을 못 마시더라도 술자리는 즐기는 편이다. 최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은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발견하려는 감독의 연작 시리즈인데 자연히 술자리에서의 남녀 행태에 관한 장면이 많았다.

보통 촬영 소품으로 맥주는 '보리차', 소주는 '맹물'로 대체된다. 진짜 술을 사용한 '생활의 발견'은 연기는 리얼했지만 추상미는 그 진짜 술 덕에 몸무게가 10kg이나 늘었다고 한다. 그룹 신화의 전진은 주량이 소주 6병 쯤 되는 '탱크'인데 팬들에게 생일 선물로 소주를 받기도 할 정도다.

안재욱·김창완·박진영·김건모·신동엽·손범수·전유성씨 등도 '두주불사파'로 유명하다. 언젠가 '와인 폭탄주'를 애용하는 김창완씨와 아침 생방송을 앞두고 새벽까지 권작했는데, 평소 그는 방배동 그의 집에서 여의도까지 산악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할 정도로 체력 관리를 하기 때문에 두주불사는 사고로 이어지는 법이 없다.

이와 달리 술 냄새만으로도 그냥 취하는 '밀밭파'가 있다. 홍록기·김국진·김용만·배철수·문희준·정재환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몇 시간이고 얘기를 나누는 맹숭맹숭한 스타일이다. 포도주를 애호하는 '와인파'도 술자리의 여흥보다는 얘기 나누기를 즐기는데 박상원·양진석·장호일씨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화 매개체이며 인간관계의 윤활유인 술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무더운 여름 야외 수영장에서 게임쇼 녹화를 하는데 일이 지연되면서 점심에 곁들인 반주가 그만 과했다. 술에 취한 진행자의 흐느적거리는 멘트를 편집으로 걸러서 가까스로 방송 사고를 막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소주에 취해 그만 맥주병에 담긴 소변을 원샷한 사건, 폭탄주에 폭탄 맞아 열애 중인 파트너를 언론에 공개한 경우까지 그 일화는 끝이 없다.

그런 연예인들이 자주 가는 술집중엔 뜻밖에도 고급 술집이 아닌 청담동 일대의 포장마차가 많다. 여의도 문화방송 주변 포장마차가 한때 밤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어 주인이 벤츠를 샀다는 '전설'도 있다. 다른 어떤 직종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인기의 부침이 심한 연예계. 그 '경쟁의 사각링'은 일종의 '술 권하는 사회'인 셈이다.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 났더면 술이나 얻어 먹을 수 있나."(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중에서)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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