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문화계 '脫 맨해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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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미국 문화의 메카 뉴욕 맨해튼이 자신의 일부 기능을 이웃 동네인 퀸스에 떼어주고 있어 문화의 '탈(脫)맨해튼 바람'이 예고된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위치한 미드타운과 업타운 중심으로 형성됐던 맨해튼의 문화 중심지가 소호(SOHO)와 트라이베카의 출현으로 잠시 남하하다가 급기야 동쪽인 퀸스까지 진출한 것.'제2의 소호 탄생'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퀸스에서도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지역은 단연 퀸스 롱아일랜드 시티다.

우선 현대미술의 보고(寶庫)인 MoMA(Museum of Modern Arts)가 맨해튼 전시장의 개·보수를 위해 임시 전시장소로 이곳을 택했다. 퀸스 블러바드 33가에 6월 29일 들어서는 이 전시장은 16만평방피트 규모의 초대형으로 '퀸스 MoMA'로 명명됐다.

개·보수가 끝나는 2005년까지 맨해튼 MoMA의 명품들은 이곳 퀸스 MoMA에 전시된다.

퀸스 MoMA측은 벌써부터 개관기념전을 비롯, 피카소·마티스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전 기획을 마쳤다. MoMA는 인근에 위치한 PS 1 컨템퍼러리 아트 센터도 최근 인수, 개·보수 공사를 마치고 개관했다.

퀸스 MoMA 옆에는 연극·뮤지컬·음악회 등 각종 공연이 열리는 '라과디아 공연예술센터'가 자리잡고 있어 뉴욕의 원로 예술인들은 이 센터가 앞으로 맨해튼에 있는 '링컨센터'에 버금가는 기능을 담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맨해튼 전경을 한눈에 바라보며 탁 트인 자연의 정취 속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전에는 신예들의 데뷔 장소 성격이 강했지만 요즘엔 전시 업체들끼리 치열한 대관 경쟁을 벌일 정도다. 또 한 블록 밑, 레이니 파크 인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품들을 한데 모아놓은 '이사무 노구치 가든 뮤지엄'이 최근 오픈했다.

푸틴 팩토리 빌딩이라는 화가 전용 빌딩도 퀸스에 자리잡고 있는데 뉴욕 일원의 예술가들은 이 건물을 아예 '아티스트 빌딩'이라고 부른다.

이 빌딩에 입주해 작업하는 화가는 줄잡아 2백여명이며 상당수의 한인 화가도 포함돼 있다.

맨해튼 문화가 퀸스로 옮겨가는 현상은 맨해튼의 비싼 임대료와 교통혼잡 때문만은 아니다. 아트센터가 맨해튼에 위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진 데다 예술인들이 탈도심 운동을 전개한 결과다.

앞으로 파리나 베네치아 등 유럽의 문화도시들에서도 이같은 움직임이 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편 탈맨해튼 바람의 최대 수혜자가 된 퀸스 예술진흥원은 제2의 소호 또는 신흥예술타운으로서의 퀸스의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등 신바람이 났다.

퀸스 이전을 영구히 기념할 수 있는 새로운 미술장르의 탄생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퀸스는 퀸스에서 태동한 미술 문화 변혁의 작은 바람인 '퀸스 장르'가 다시 할렘 강을 건너 맨해튼에 역수출되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다.

뉴욕=신중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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