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의료계에 ‘뜨거운 감자’ 던진 OEC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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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 의료개혁 권고안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단체들이 성명서를 내는 등 반발하고 있고, 정부 안에서도 일부 권고안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OECD가 내놓은 정례적인 한국경제보고서의 일부로 ‘권고’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처럼 파장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분야 최초 보고서=OECD가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의료분야를 다룬 것은 처음이다. 보고서는 기획재정부 윤종원 경제정책국장이 “용역을 의뢰했다면 많은 돈을 지불했어야 할 값진 보고서”라고 평가할 정도로 의료개혁이 왜 필요한지,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촘촘히 짚고 있다.


한국의 의료 현실은 이 보고서에서 수치로 잘 드러난다. 의사당 진료건수는 OECD 1위(연간 7000건), 약값은 OECD 평균의 2배, 최저 수준(g당 0.02달러)의 담뱃세로 인해 남성 흡연율은 OECD 3위,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진료건수는 OECD 평균(6.8회)을 훌쩍 웃도는 11.8회…. 이어 보고서는 급격한 고령화와 의료비 지출 증가로 건강보험 재정에 탈이 생길 것이란 우려를 담았다.

이에 따라 OECD는 ▶입원 부문 포괄 수가제 확대 ▶복제약 가격 인하 ▶동일 성분 약에 대한 보험금 상한 설정 ▶일반의약품(OTC)의 약국 외 판매 ▶처방당 약제 수에 따른 비용 차등화 ▶담뱃세 인상 등 개혁 과제들을 열거했다. 또 높은 개인 부담 비율을 낮추기 위해 간접세를 올리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 진료를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밖에 논란이 많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나 병원 간 인수합병(M&A)을 허용하고, 의대 정원도 늘리는 게 좋다고 훈수를 뒀다.

◆부가세 인상엔 ‘글쎄’=정부 안의 반응은 엇갈린다. 재정부는 대체로 환영하는 편이지만 간접세(부가가치세)와 담뱃세를 올리라는 OECD의 권고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부가가치세 세율이 10%로 OECD 평균 18%보다 낮아 인상 여력이 있다지만, 세율을 올릴 경우 계산이 복잡해지고 탈세가 늘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재정부는 부자 세금을 깎아주면서 간접세만 올리려 한다는 비난에 밀려 중도 하차했던 담뱃세(죄악세) 추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하성 재정부 미래정책관은 “고용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보험료보다 간접세가 장점이 있으나,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소득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형평성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재정부는 나머지 개혁 권고들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는 “의약품 가격체계 개선, 불법 리베이트 근절, 복제약 가격 인하 등은 현재 정부에서 추진 중인 과제”라며 “다만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 허용 문제는 실질적인 내용과 상관없이 이념적인 논쟁 때문에 합리적인 대안 마련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기구 끌어들여 압박”=보건복지부는 OECD 논의과정에 참여했으나 강도 높은 개혁 권고안이 나오자 이해관계자의 반발을 걱정하는 눈치다. 노길상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지난 15일 OECD 토론회에서 “OTC의 약국 외 판매는 현재 우리나라의 약국 수가 외국에 비해 많아 허용하기 어렵고, 의사 수도 무조건 늘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역시 장기 종합과제로 검토한다는 것이 복지부의 입장이다. 다만 담뱃세를 인상하라는 OECD 권고엔 동의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일부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정완교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재의 포괄수가제는 의료 비용이 비싼 의료기관만 참여해 오히려 의료비 지출만 증가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6일 성명서를 통해 “영리병원 도입을 찬성하는 기획재정부가 한국 사회 내에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어려워지자 OECD까지 끌어들여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도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영리병원 도입과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권고한 OECD 보고서는 보건의료의 개혁이 아닌 심각한 퇴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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