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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세종시 가려던 기업들 5개월은 어디서 보상 받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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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올 1월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의 백미는 삼성·한화·웅진·롯데 등 4개 기업 유치였다. 세종시를 ‘행정 중심 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바꾸는 수정안의 핵심이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대기업을 얼마나 유치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4개 기업은 세종시에 모두 4조5150억원을 투자해 2만2994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기업들의 결정은 저마다 고심 끝에 나왔다. 그린에너지와 헬스케어 등에 2조500억원을 투자키로 한 삼성의 계획은 수년에 걸친 차세대 신성장 동력 확보 노력과 직결된 것이었다. 한화의 태양광사업 연구개발 센터와 공장 건립 계획 역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는 그룹의 미래가 달린 포석이었다. 기업들은 그뒤 애타는 심정으로 수정안의 결론을 기다려왔다.

세종시 수정안 발표 직후 투자계획을 이행하겠다는 양해각서(MOU)까지 정부와 맺어둔 상황에서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처지도 아니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당시 “(수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리라고 상상도 못 해봤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꼭 5개월 만에 수정안은 불발탄으로 끝나가고 있다. 이제 난처해진 것은 기업들이다. 수정안이 처리되는 대로 착수하려고 했던 투자계획을 원점에서 조정해야 할 판이다. 공장 부지를 새로 찾는 것도 어렵지만, 정작 아쉬운 것은 시간 손실이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서 5개월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글로벌 일류 기업들도 투자 적기를 놓치면 금방 선두대열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기업들이 투자 의욕을 보인 녹색산업은 세계 각국 정부가 경쟁이라도 하듯 자국 기업을 전폭 지원하는 분야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녹색 산업에선 하루라도 먼저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가 막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기업들은 불만을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정치권이 세종시 수정안 표결 처리를 합의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기업을 배려한 흔적은 별로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답답한 심정으로 세종시 수정안 처리를 기다려온 곳은 바로 기업들인데 말이다. 출범 순간부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천명한 MB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상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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