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보다 연봉 높은 외환 딜러 새로운 인생을 딜링하러 떠난다 : 외환은행 이창훈 팀장 이달말 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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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외환 딜링(dealing)은 오로지 돈만 추구하지요. 하지만 때론 돈 이상의 성취감을 주기도 합니다. 인생을 쏙 빼닮은 데가 많아요."

국내 외환 딜러 1세대로 명성을 날린 이창훈(李昌勳·46) 외환은행 원·달러 데스크 팀장. 그는 15년간의 외환 딜러 생활을 이달말 마감하는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李팀장은 2000년 국내 시중은행에서는 처음으로 은행장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딜러가 돼 화제를 뿌렸다.

그는 외환은행 미국 뉴욕지점에 근무하던 1995~96년 과감한 거래로 월가의 외환 딜러들 사이에 'KEB(외환은행의 약칭)'와 '창훈 리'라는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는 당시 미국계 은행의 딜러조차 한해 10만달러를 벌기 어려웠던 미 국채 선물거래를 통해 1백만달러 이상의 누적 수익을 올렸다.

딜러들은 더 뛸 여력이 있는 그가 은퇴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 한다.

"그동안의 딜링 경험으로 봐서 여운과 여유가 있을 때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은퇴 결정에 대해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파는 기분으로 했다"며 딜러다운 비유를 했다.

딜링은 달러를 살 것인가 팔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라는 점에서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호재와 악재가 어우러져 있고 이쪽 저쪽의 가능성이 다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것이 딜링의 본질입니다. 스릴이 넘치고 땀을 쥐게 하는 일입니다."

李팀장은 "수백억원이 걸린 딜링은 탐욕과 공포의 중간에서 갈등하는 것으로, 탐욕을 절제해 공포심을 이겨내고 평정과 중용을 찾을 때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지론대로 그는 남들이 우르르 몰리는 곳에 가기보다 뒷길에서 먹을 곳(승부처)을 찾는 딜러로 유명하다.

그는 "순간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딜링을 오래 하다 보니 판단력 하나는 누구 못지 않다"며 "이제는 새 삶을 개척해 빨리 적응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건설업을 하는 친구를 도우며 조용히 살 계획이라는 그는 연봉이 10억원이라는 소문에 대해 "10억원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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