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도 변신 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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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영국·일본 등 선진국들의 우편업무에 개혁바람이 거세다. 택배산업과 인터넷의 번창으로 정부가 관장해오던 기존의 우편배달 업무가 갈수록 뒷전으로 밀려나고 그 결과 적자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점점 많은 나라들이 우정사업을 민간에 개방하고 있다.

◇편지배달에도 경쟁체제 도입=일본의 경우 국가기관인 우체국을 내년부터 우정공사로 전환하고, 민간기업의 우정사업 진출도 허용하기로 했다.

일본 총무성은 26일 우체통 수·배달기간·요금 등 민간기업의 우정사업 참여기준을 마련하고, 연내에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인구 천명당 하나 이상의 우체통을 설치하고 2~3일내 배달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해 우편사업을 개방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택배업체들은 편지배달에 자체 화물트럭 배달망을 활용할 경우 배달시간이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우정공사와 경쟁할 때 유리한 입장에 설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전국 30만개의 화물접수 창구를 보유하고 있는 야마토운수를 비롯한 일본의 대형 택배업체들은 내년 중 우편사업에 진출키로 하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도 우정청(USPS)이 UPS·페덱스 등 민간 택배업체들과 오래 전부터 경쟁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우편시장을 전면 개방했으며, 독일 등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내년부터 1백g 이상의 우편물을 민간에 개방키로 했다. 지금은 3백50g 이상만 민간이 취급할 수 있다. EU는 앞으로 계속 개방폭을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우체국이 변한다=영국에서 우체국을 운영하는 공기업인 콘시그니아는 앞으로 직원 4만명(전체의 약 20%)을 감원하고 우체국 3천곳을 폐쇄할 계획이다. 이 회사의 앨런 레이튼 회장은 "매일 1백50만파운드(약 28억원)의 적자가 발생, 이대로 가다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구조조정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감원규모는 3백60여년 영국 우정역사상 가장 큰 것이다. 회사측은 이같은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12억파운드의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앞서 독일은 1990년대 들어 우편사업 구조조정작업을 진행해 왔다. 2000년에는 우체국을 증시에 상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독일은 통일되던 90년 연방체신부를 독립법인으로 전환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95년엔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도이체 포스트는 적자를 내던 부문을 과감히 도려내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능률적인 우편전문회사로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국내에서는 2000년 7월 정부기관이지만 민간기업의 경영자율성을 도입한 '우정사업본부'를 출범시켰다. 민영화는 아직 이르다고 판단,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의 사업본부 체제를 택한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출범 당시부터 우정사업에 e-비즈니스를 결합, 특산물 등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을 비롯해 인터넷 뱅킹에도 뛰어들었다.

이교용 본부장은 "이 결과 99년 2조5천8백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3조4천7백억원으로 2년새 34%가 늘었고, 경상이익도 99년 6백억원에서 지난해 1천억원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정사업을 당분간 이같은 사업본부 체제로 운영한 뒤 공사화나 민영화는 차차 검토한다는 쪽이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서울=김종윤·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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