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중의 별 3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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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핼리 베리와 함께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흑인 천하'로 만든 주인공 덴절 워싱턴(48·사진). '트레이닝 데이'로 그가 받은 남우주연상은 '말콤 엑스'(1992년)'허리케인 카터'(99년)에 이은 세번째 도전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었다. 그의 수상으로 인해 최후까지 치열하게 접전을 펼친 '뷰티풀 마인드'의 러셀 크로는 '글래디에이터'에 이은 남우 주연상 2연패의 야망을 접어야 했다.

64년 '들에 핀 백합(Lilies of the Field)'의 시드니 포이티어 이후 언제 흑인 배우에게 남우 주연상이 돌아올지를 고대했던 흑인들에게 이날 소식은 복음이었다. 그는 '허리케인 카터'에서 인종차별의 덫에 걸려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는 불굴의 복서를 열연했지만 '아메리칸 뷰티'의 케빈 스페이시에게 석패했었다. 그래서 이번 시상식을 앞두고 할리우드에서는 줄리아 로버츠 등 동료배우들이 앞장서 "이번에야말로 그가 꼭 받아야 한다"는 '동정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수상작 '트레이닝 데이'는 그간 지적이고 강한 영웅적인 면모가 주를 이루던 그의 이미지를 일신한 영화였다. 연기 생활 20년 만에 처음으로 악역을 맡았던 것이다. 부정 부패로 얼룩진 고참 형사로 나와 건들거리는 행투로 신참 형사를 닦아세우는 워싱턴의 변신한 모습은, 범작이라는 작품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관객들에게 낯설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워싱턴은 '필라델피아''크림슨 타이드' 등 할리우드의 화제작에 꾸준히 출연해왔다. 그는 대개 구색 맞추기 식으로 기용되던 이전의 흑인 배우들과 달리 '주류'의 배역을 성공적으로 연기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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