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칩샷 2개 퍼크스'무명 반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골프공은 탁구공보다 무거웠다. 뉴질랜드 탁구 챔피언을 두차례나 지낸 그였지만 골프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골프에 인생을 걸고 태평양을 건넌 지 15년 만인 2000년, 일곱차례의 도전 끝에 겨우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카드를 따냈다. 이제까지 최고성적은 지난해 혼다 클래식에서 기록한 공동 2위. 지난해 상금랭킹 1백13위(45만7천달러)에 세계랭킹은 2백3위에 불과한 크레이그 퍼크스(35·뉴질랜드)는 여전히 철저한 무명이었다.

그러나 퍼크스는 25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 TPC골프장(파72·6천3백86m)에서 끝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합계 8언더파 2백80타로 생애 첫 정상에 올랐다.

우승 경력이 없는 선수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것은 처음. 올시즌 PGA 투어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제리 켈리·렌 매티스·케빈 서덜랜드·이언 리갓(이상 미국)에 이은 또 하나의 반란이었다.

퍼크스가 첫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신기(神技)의 칩샷이 밑거름이 됐다. 3라운드까지 2위였던 퍼크스는 이날 15번홀에서 60㎝ 거리의 파퍼트를 놓치는 등 이때까지 보기를 7개(버디 4)나 범하며 스티브 에임스(미국)에게 1타차로 뒤졌다. 그러나 16번홀(파5·4백47m)부터 믿어지지 않는 역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퍼크스의 두번째 샷이 그린 오른쪽 6.3m 거리의 러프에 빠졌다.

<그림 참조>

여기에서 퍼크스는 웨지를 빼들었고 공은 그림처럼 홀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글. 단숨에 1타차 선두에 나선 퍼크스는 아일랜드 그린인 17번홀(파3·1백19m)에서 버디를 잡아 2타차로 달아났다.그리고 마지막 18번홀(파4·3백96m).퍼크스는 왼쪽에 입을 벌리고 있는 워터해저드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드라이버샷을 오른쪽 숲속에 빠뜨렸다. 페어웨이로 공을 쳐낸 뒤 세번째 샷마저 그린 위쪽 러프에 처박히자 2타차 리드마저 불안해 보였다.

홀까지는 내리막 약 9m 거리. 공을 그린 위에 세우지 못할 경우 스코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는 위기였다. 퍼크스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웨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린 가장자리에 떨어진 공은 내리막 경사를 타고 또다시 거짓말처럼 홀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환상의 칩샷 두차례로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챔피언 타이거 우즈(미국)는 1언더파 2백77타로 공동 10위에 올랐고, 최경주(32)는 합계 2오버파로 공동 28위에 랭크됐다.

정제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