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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여성 강력반장 남궁숙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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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1. 1979년 10월 26일.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총탄에 맞은 그날 오전. 외화 주인공 '여형사 페퍼'를 동경하는,솜털이 보송보송한 열여덟살 소녀가 경찰관 시험을 보고 있었다.

"너 1백60 안되지?"

면접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 제한 신장은 1백60㎝. 소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네!1백59입니다!하지만 자신있습니다! 절 뽑으시면 절대로 후회 안하실 겁니다!"

이날 전국에서 뽑힌 한국 최초의 무도 특채자 여경 아홉명의 명단엔 소녀의 이름이 있었다.

#2. 2002년 2월 5일. 한국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이 탄생했다. 혼자서 2년 만에 범인 1백57명 검거라는 화려한 이력의 신임 반장은 부임 한달 열흘여 만에 3인조 연쇄 살인강도·마약폭력단을 체포했다. 1계급 특진을 포함해 반원 전체가 포상을 받을 만큼 큰 실적이었다.

남궁숙(南宮淑·41) 서울 성북경찰서 강력3반장. 국내 유일의 여성 강력반장인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기자는 걸걸한 목소리에 가죽점퍼를 걸친 베테랑 여형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도 특채자 출신으로 태권도 5단, 합기도 5단에 태권도 세계대회 우승자라는 그의 이력 때문이었다.

컨테이너 가건물이 차가워 보이는 강력반 문을 열자 '강력 3반장'이라는 검은 명패 위로 꽃대가 늘씬하게 뻗은 칼라가 화사하게 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네. 제가 꽂은 거예요. 분위기가 너무 삭막해서…. 거금 1만8천원이나 들었답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답했다. 또렷한 쌍꺼풀, 단정한 코, 고른 이, 자그마한 얼굴, 살짝 마스카라까지 빠뜨리지 않은 화장. 정숙한 국어 선생님을 연상케 하는 여성이 거기 있었다.

"형사 같지 않다구요? 이게 얼마나 수사에 유리한지 모르시죠?"

남궁반장이 웃으며 말하자 옆에서 고참 형사가 거든다.

"요번 사건에도 반장님이 용의자 가족한테 전화해서 범인 휴대폰 번호를 알아냈다니까요."

유난히 고운 목소리로 "전 미스 김인데요…"라는 등 능청을 떨며 범인들을 유인해 낸 얘기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조용조용한 그의 말투를 보면 과연 경계심이 강한 범인들도 깜빡 속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원 상담을 하며 다져진 말솜씨와 상대방 헤아리기가 그에겐 큰 무기다. 무도 특채자 출신답지 않게 그는 성폭력상담실·문서보존실 등 내근 업무만을 맡아왔다.

"첫 부임지에서 같은 경찰관인 남편을 만났어요. 시부모님도 모시고 아이도 있다보니 저라도 외근을 안하기로 약속했어요. 여자형사기동대가 생겼을 땐 정말 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

단독 검거 1백57명이라는 실적도 서울시경 민원실에서 내근을 할 때 올린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다가 직접 범인 검거에 나섰다. 키 1백80㎝에 몸무게 90㎏의 거구도 혼자 힘으로 체포했다. 당시 민원실장은 '매춘과의 전쟁'을 벌여 화제를 모았던 김강자 서장이었다. 남궁반장은 강력반장 부임 후 첫 사건을 해결한 뒤 민원실 여경에게도 출동 기회를 줬던 김서장에게 오랜만에 감사전화를 했다. 김서장은 "네가 해낼 줄 알았어"하며 옛날과 똑같이 답했다.

경찰청 문서보존실로 발령받은 뒤로는 이런 '단독 출동'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 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두 아이는 친정이 있는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남편은 충주경찰학교에 유도 교관으로 발령받았다.

결혼 뒤 처음으로 홀가분해진 그는 올초 여경에게도 기회를 적극적으로 준다는 서장의 평판에 기대를 걸고 서울 성북경찰서로 이동 신청을 했다. 마흔을 넘겼지만 그는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강력반장을 한번 해보겠나?"

너무나 뜻밖이었던 서장의 말에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큰 소리로 답했다. 단 한번도 형사 생활을 해보지 않은 40대 '아줌마'가 남자들도 하기 어렵다는 강력반장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집엔 왜 도둑이 안들지? 엄마·아빠가 금세 잡아버릴텐데…"라고 투덜대곤 했던 당찬 아이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 경험 한 번 없는 여자반장을 모셔야만 했던 반원들의 불만은 없었을까.

"오자마자 살인사건수사본부가 생겼으니까 그런 데 신경쓸 겨를이 없었죠, 뭐."

정신없이 함께 뛰는 동안 어느새 '우리 반장님'이 돼버렸다고 '독사' 박형사가 말했다. 남궁반장이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짚어낸 몇 개의 단서도 반장의 권위를 세웠겠지만 그보다 '함께 먹고 자고 밤을 새면서' 정이 깊어졌다고 한다.

막내 김형사는 전남 해남·영암 등을 다니며 마약폭력단을 검거할 때 "저 여자 누구야?"라는 범인의 막말에 화가 나 주먹을 날릴 뻔했다며 "우리 엄마죠. 가족 같아요"라고 말했다. 남궁반장의 컴퓨터 모니터 앞에 김형사가 인형뽑기로 따온 새끼양 인형이 달랑거렸다. 그가 부임한 지 이제 48일이다.

글=구희령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태권도 5단, 합기도 5단. 성폭력상담실 등 내근 업무만 맡고서도 단독 검거 1백57명. 마침내 험하기로 소문난 '경찰서 강력반장'이 됐다. 40대 아줌마로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걸걸한 목소리에 가죽점퍼를 걸치는 대신 나긋나긋한 목소리 또렷한 쌍꺼풀, 살짝 한 화장까지 정숙한 선생님을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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