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예산심의 늦는 만큼 국가사업 차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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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올해도 여야 간 정쟁으로 인해 국회 예산심의가 법정 기한은 말할 것도 없고 정기국회 회기 내에도 이뤄지지 못했다. 더욱이 여야 간사들이 내년도 예산안을 정기국회 회기 내에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도록 합의를 보았음에도 이를 지키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피해를 보는 사람은 국민이다. 어려운 경제 여건 하에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 나라살림이 정쟁의 볼모로 잡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된다.

헌법과 예산회계법은 예산안 심의 기한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예산심의 완료 기한에 대해 30일 정도의 여유를 두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예산집행에는 많은 준비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행정부에 예산집행 준비를 위한 시간을 보장해주기 위함이다. 국회 예산심의가 지연돼서는 안 되는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회 예산심의가 끝나고 예산집행을 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형식적 절차들이 있다. 국회에서 확정된 예산이 정부에 이송되면 국회 증액에 대한 정부의 동의 절차를 거치고 예산 공고안이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관보에 게재된다. 그리고 각 중앙관서의 장이 예산배정요구서 및 자금계획서를 제출하면 분기별 배정계획 및 월별 자금계획을 작성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준비 작업에 30일 정도가 소요되는 것이다.

둘째, 신규사업의 경우 계속사업보다 사업 공모 등 사전준비에 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돼 전년도 말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일자리 창출 사업 등 사업추진을 위한 사전준비가 필요한 사업은 예산심의가 지연될 경우 연초 집행이 곤란하다. 올해의 예를 보면 산업자원부의 이공계 미취업자 현장연수 사업의 경우 지난해에 국회 예산심의가 지연된 결과 사업공고 및 연수기관 선정 지연으로 3월 말 이후에야 연수생을 선발했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집행실적이 총 6000명 중 85명만을 선발하는 1.4%의 저조한 집행실적에 머문 적이 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정의 조기집행에 차질을 빚게 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셋째, 국회에서 예산의결이 늦어지면 순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심의 및 집행도 늦어진다. 지방자치법에 의하면 광역자치단체는 회계연도 개시 15일 전인 12월 17일, 기초자치단체는 10일 전인 12월 22일까지 지방의회에서 예산을 심의 확정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국회에서 예산의결이 늦어질 경우 미확정된 교부금 및 보조금을 기준으로 예산을 심의해야 하기 때문에 지방의회에서 예산심의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일부 사업은 추경 편성시까지 사업 추진이 지연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올해의 예를 보면 국회 심의과정에서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관 기능 보강 사업으로 50억원이 신규 반영됐는데 지방비 매칭 예산이 추경예산에 반영되기 때문에 7월 말까지 전혀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넷째, 정부산하기관과 정부투자.출자기관도 국회 예산의결이 늦어지면 지장을 받게 된다. 정부 출연금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정부안을 기준으로 연말까지 예산을 확정한 후 2~3월께 이사회를 다시 개최해 수정을 해야 한다. 그 결과 예산집행이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국회 예산심의가 늦어질 경우 국민의 생활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 따라서 나라살림을 다루는 문제는 정쟁과는 별개로 운용돼야 한다. 예결위의 상임위화 등 제도 개혁을 주장하기에 앞서 예산심의를 철저하게 하는 국회의 예산심의 문화부터 새롭게 정착해야 할 것이다.

윤영진 계명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