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올해의 주식 5] 3. SK(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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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SK는 올해 가장 드라마틱했던 종목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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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그렇고, 주가도 그렇다. SK는 지난 9월 말에 이미 1조164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마침내 꿈의 모임인 '1조원 클럽'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국제유가 급등이 일등공신이었다. 남들에겐 죽을 맛이었던 유가 급등이 원유를 정제하는 SK엔 행운이었다. 유가 급등으로 가수요까지 붙으면서 석유정제 마진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6700억원대에 그쳤던 실적은 한 단계 도약했다. 회사가 그동안 역점을 기울여온 해외유전 개발도 '복덩이'가 됐다. 리비아와 페루의 유전에서 상업생산이 시작됐고, 올해만 2000억원의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추산된다.

주가는 실적호전이란 날개를 달고 비상했다. 연초 2만6500원이었던 주가는 9개월 만에 꼭 두배가 됐다.

10월 하순엔 외국인 최대주주인 소버린자산운용이 임시주주총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1심에서 형을 선고받은 최태원 회장의 자격을 문제삼겠다는 것이었다. 올 3월 주총에서 최태원 회장이 승리한 후 수면아래로 내려간 듯했던 인수합병(M&A) 이슈는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소버린과 SK의 지분경쟁이 재연될 것이란 기대감 속에 주가는 또 한차례 급등했다.

실적호전이란 날개가 피곤해질 무렵 M&A라는 새로운 날개가 돋아난 셈이었다.

그러나 지난 1일 6만9300원을 기록하며 7만원대 진입을 코앞에 뒀던 주가는 이후 빠르게 미끄러져내렸다. 팬택앤큐리텔이 백기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데 이어 삼성전자까지 SK 주식을 대규모로 매집하고 나선 것이 계기였다.

삼성전자가 백기사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면 국내 다른 기업들도 SK편을 들고 나올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시각이 확산됐다. 지분경쟁에 대한 기대감은 빠른 속도로 꺼져갔고 외국인은 이탈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44.0%에서 61.8%까지 치솟았던 외국인 지분율은 다시 낮아지고 있다.

상당수 시장 분석가들은 SK가 2006년까지는 '1조원 클럽'에 들어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석유 수요가 줄더라도, 실적을 좌우할 석유정제 마진은 탄탄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적 개선 속도는 상당히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말과 내년 초의 주가를 쥐고 있는 것은 역시 실적보다는 소버린과의 지분 싸움이다.

지분경쟁에서 소버린이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외국인 주주들은 차익실현을 위해 주식을 처분할 수 있다. 주주명부가 폐쇄되고 나면 백기사 역할을 선언한 기업이나 기관도 주식을 들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이 때문에 연말과 연초 주가가 크게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증권 김영진 애널리스트는 "실적개선이 둔화되고 지분경쟁 가능성도 약해질 것으로 보여 내년 SK주가는 약세권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적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굿모닝증권 황형석 애널리스트는 "연말 연초 주가가 조정받을 수는 있으나, 주총 이후엔 기업 펀더멘털에 의해 주가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도 향후 실적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SK 이승훈 IR담당 상무는 "해외유전 개발과 윤활유 사업 부문 강화 등을 통해 수익구조가 안정되고 있어 과거처럼 석유화학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회사의 펀더멘털이 유지되는 만큼 M&A 이슈가 사라져도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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