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보다 이미지 대결" 美 대선·언론보도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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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주역은 조지 W 부시도, 앨 고어도 아니다. '대통령선거와 미디어' '정치와 언론'의 문제와 폐해가 정점에 다다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신간 『대통령과 미디어』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정치와 언론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일본 학자가 미국의 대선과 언론관계를 바라본 특이한 성격의 이 책은 주제 자체가 갖는 시의성 높은 흡인력 때문에 국내에서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뉴스위크 일본판 부편집장을 지낸 바 있는 저자 이시자와 야스하루(일본 가큐슈인여대)교수는 이 책에서 미 대선이 '이미지 선거'로 전락했다는 점을 강도높게 비판한다.

둘 다 정치인 명가 출신인 부시와 고어의 대선을 놓고 '도련님들의 대결'이라고 야유를 보내기도 하는 저자가 볼 때 선거과정을 보도하는 미디어 자체가 이제는 하나의 '선거 플레이어'가 됐다. 정책대결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이미지 포장술만 어지럽게 전개되는 '미디어 선거'의 문제점은 TV 선거광고를 통해 극명하게 표출된다. 후보간 흠집내기 전략에 미디어가 활용되고 또 미디어의 힘 과시용 여론조사까지 가세하면 유권자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시와 고어의 대결은 '역사상 보기 드문 접전'이라기보다 정책이라는 선거의 알맹이가 빠진 '세기의 범전(凡戰)'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정보화 시대 저널리즘과 정치의 관계는 원점에서 새롭게 검토돼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저자가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한가지다. "미디어 전략은 정치인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언론사 대표 출신의 옮긴이 김동익(성균관대 정보대학원)교수가 쓴 60쪽 분량의 역자 후기(後記)는 한국과 미국의 정치와 언론 상황을 비교해 보는 데 도움을 준다. 지역감정 등 한국의 역대 선거 쟁점을 분석한 김교수는 한국도 미국처럼 '언론의 비즈니스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청자와 독자의 눈길만을 의식한 센세이셔널리즘이 유행하며 정치·선거 보도가 오락 프로그램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 대한 김교수의 시각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선 한국의 언론은 미국처럼 거대자본에 의한 지배를 받고 있지 않으며 또 특히 지난해 언론사태를 겪으며 권력과 언론 모두가 뼈아픈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언론사태에 대해 김교수는 "권력 입장에서 보면 조세의 정의라는 조그만 성취가 있었던 반면 정치적 의혹을 갖게 했다는 큰 손실을 보았다. 언론 입장에서는 제작노선에 대한 압력을 극복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신문마다 다양한 개성과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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