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테러의 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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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 1백89개국 대표와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멕시코에서 열린 유엔 개발재원회의가 22일 밤(현지시간) 닷새간의 일정을 끝내고 막을 내린다.

참가국들은 이날 ▶빈곤국 부채 탕감의 신속한 이행▶저개발국의 빈곤 퇴치를 위한 자조(自助)노력▶공적개발 원조자금 모금목표 실천 등을 골자로 하는 '몬테레이 합의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는 1990년대 이후 더욱 심화한 국가간 빈부격차 문제(남북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전환점이 되긴 했지만 빈부격차의 해소를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선진국과 빈곤국간에 커다란 견해차를 드러냈다.

◇"빈곤은 테러의 온상"=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한동안 국제사회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던 빈부격차 문제가 세계 정치의 중심 이슈로 재등장했다는 점이다. 몬테레이 회의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오루세군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 등 각국 정상급 참석자만 50명에 이를 정도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같은 변화는 지난해 9·11 테러 이후 달라진 국제안보 환경을 반영한 것이다. 한승수(韓昇洙) 유엔총회 의장이 기조연설에서 "빈국들은 폭력과 절망의 배양지"라고 말하는 등 많은 참석자들이 "빈곤을 방치하면 세계질서에 적대감을 품은 테러리스트가 자라게 된다"고 강조했다. 빈곤퇴치가 인도주의의 차원을 넘어 국제안보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부시 대통령은 회의 참석을 앞두고 "미국의 대외원조자금을 현재의 1백억달러에서 1백50억달러로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테러리즘이 자라는 온상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유럽연합(EU)도 15개 회원국의 원조자금을 70억달러 증액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따라 냉전 종식 이후 감소 추세였던 선진국의 원조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좁혀지지 않은 견해차=이번 회의에서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선 이견과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미국과 EU가 밝힌 원조자금 증액분은 당초 유엔이 설정한 목표치에 비해선 크게 모자라는 액수다. 이번 회의의 출발점이 된 2000년 밀레니엄 정상회의에서 선진국들은 빈곤퇴치를 위한 자금으로 국민총생산(GNP)의 0.7%를 지원키로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지원금 비율은 0.1%, EU는 0.33%에 그치고 있다. 마크 말로크 브라운 유엔개발기금 조정국장은 "미국과 EU가 약속한 증액분은 목표치의 5분의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노르웨이·덴마크 등 대외원조에 '모범적'인 유럽 5개국 정상들은 21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공동 성명문을 게재하고 "현재의 재원으로는 2015년까지 하루 생활비 1달러 이하의 극빈층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밖에 후진국들의 부채탕감이 무성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해결점을 찾지 못한 점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또 미국이 개발자금 증액을 발표하면서 시장개방과 자유로운 기업활동 보장 등 전제조건을 붙인 것도 개발도상국들의 반발에 부닥쳤다. 다국적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란 판단에서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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