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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한국영화 붐'과연 거품인가 : 올 개봉작 흥행 부진에 위기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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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비록 일부에서이긴 하지만 최근 한국 영화계에 '위기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올 들어 개봉한 영화들의 흥행 성적이 기대치를 훨씬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25일 개봉한 전도연·이혜영 주연의 '피도 눈물도 없이'는 전국에서 60만명을 겨우 턱걸하는 수준으로 막을 내릴 조짐이다. 지난 8일 관객을 맞은 김태우 주연의 '버스, 정류장'도 첫 주말 스코어 6위로 출발한 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두 작품에 비하면 지난 1월 나란히 극장에 걸린 '2009 로스트 메모리즈'와 '공공의 적'은 나은 편이다. 총 제작비 80여억원을 들인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전국 2백30만명으로 가까스로 손해를 면했다.

전국에서 약 3백만명이 관람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은 수입이 제작비 30여억원을 넘어섰지만 애초 기대만큼 시장의 분위기를 이끌 에너지를 발휘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앞으로 개봉할 '정글쥬스''생활의 발견''집으로…''몽중인''예스터데이''복수는 나의 것''재밌는 영화' 등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크다. 하지만 지난 해의 '친구'(8백10만명)나 '조폭마누라'(5백20만명),'엽기적인 그녀'(4백90만명) 같은 폭발성을 지닌 작품이 나올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지난 1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영화가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급성장해 거품이 꺼지듯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영화가 '제작비의 상승→관객 수의 감소→수익성의 악화'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위기론은 성급한 판단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영화배급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일반적으로 3월은 1년 중 관객이 가장 적게 드는 비수기이므로 최근의 흥행 성적을 가지고 한국 영화의 부진을 이야기하는 건 무리"라며 "앞으로 개봉되는 영화들이 알차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가 2월까지 서울 관객을 잠정 집계한 바에 따르면 총 관객은 약 7백만명으로 지난 해보다 36% 가량 늘어났다. 이 중 한국 영화가 차지한 비율도 39%로 아직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네월드의 이준익 대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상반기에 개봉된 영화들은 대부분 재작년말과 작년 초에 투자가 확정된 영화들로 이 시기에는 한국영화에 대한 낙관적인 분위기 때문에 꼼꼼한 검토없이 다소 무리하게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는 것. 그는 이어 "그러나 우려할 수준은 아니며 하반기에는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한국 영화시장이 작아 보이는 건 지난 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급팽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해 1년간 극장을 찾은 연인원은 8천8백만명으로 사상 최고였고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도 46.1%로 유례없는 수치를 기록했다. 조희문(상명대) 교수는 "지난 해의 성적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올해 조금만 스코어가 떨어져도 체감 지수가 커지는 것 아니겠느냐"며 "시장이 오르락 내리락 출렁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점유율 30~40%선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낙관했다.

반면 평론가 김의찬씨는 "문제는 최근 나온 작품들의 수준이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데 있다"면서 "특히 메이저 영화사들이 다시 한번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국 영화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상업영화와 작가영화의 구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준익 대표는 "최근 흥행이 모호한 영화는 상업영화와 작가영화에 양다리를 걸친 애매한 작품들이었다"며 "둘 사이를 명확히 구분해 처음부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기·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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