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육은 保守도 괜찮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렇게 실내의 기밀을 발설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교육인적자원부의 '공교육 내실화 대책'이 발표된 그날 논설위원실의 아침 회의는 한마디로 냉열이 교차된 아나키 상태였다. 분위기는 냉소적이었으나 토론은 치열했기 때문이다."보충수업 없애면서 교육부가 뭐라고 그랬는지 찾아봐"라는 주문에서 "하도 헷갈려서 사설을 못 쓰겠으니 '사설 집필 불가' 사설을 내보내자"는 자탄까지 그야말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이고 백가쟁명(百家爭鳴)이었다.

교육문제는 전국민이 이해 당사자로서 누구나 한마디쯤 거든다. 도입 전투기 기종에 대해서는 찍소리 못하지만, 입시제도 변화에는 벌떼같이 들고 일어난다. 그 관심과 열의를 수렴해서 정책으로 수립하는 것이 교육 당국의 과제일 터이다. 이해 관계자가 많고 관심이 크다는 점이 교육부로서는 오히려 부담스러울지 모르겠으나, 그럴수록 중심을 잡고 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교육부 관리들이 우리 교육 현실을 정확히 보고 있으리라 믿는다. 또 웬만한 교육 이론이나 교육 전문가의 정책 제의쯤은 훤히 꿰고 있을 것이다. 그러라고 세금으로 봉급 주는 것 아닌가?

문제는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하는 데에 있다. 이를테면 보충수업 폐지를 결정할 때 그 효과와 역효과를 충분히 계산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보충수업 재개를 허용할 때도 그 결과를 충분히 검토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직무유기 조항에 걸린다. 교육부로서는 과거에는 보충수업의 역효과가 더 커서 폐지했으나, 지금은 그 효과가 더 크므로 다시 허용한다는 모범 답안을 준비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한테는 그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보충수업 역효과에서 효과로의-혹은 큰 역효과에서 작은 역효과로의-상황 변화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는 못보지만 그들은 보는 것이 있다면, 재개 결정 이전에 그 사정을 알리고 설득했어야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 진전으로 당초의 폐지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라면, 그 정책을 입안하거나 재가하거나 집행한 사람들한테 최소한 그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국민교육을 담보로 '도박한' 셈이기 때문이다.

시행착오(trial and error)는 그 말뜻만큼이나 의젓한 느낌을 준다. 내가 공부한 경제학에도 실습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이라는 근사한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 교육당국이 범하는 잘못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예컨대 A가 막히면 B로 가고, B로도 안되면 A'나 C로 뚫으려는 것이 시행착오의 논리다. 반면 A가 막히면 B로 가고, B로 안되면 다시 A로 가려는 '다람쥐 쳇바퀴'의 헛수고가 교육부의 대책이었다. 내신 반영, 수능 난이도, 체벌 부활 등 그것은 모두 왔다갔다식의 혼선이고 엎치락뒤치락 혼란이지 결코 시행착오를 통한 모색이 아니다. 나는 교육 당국이 무지하거나 무능해서 그렇게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천만의 말씀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것이다!! 현 정권 들어서만도 재임 4년 동안 교육부 장관이 7명이나 바뀌었다. 하루살이 장관이나 그 장관 아래서 과연 누가 소신 있게 A'나 C를 건의하고, 그 실패의 책임을 자청하겠는가? 교육부 수장의 말처럼 문민정부 이래 교육개혁의 '방향'은 옳았는데 '과정'에 무리가 있었다는 따위의 전천후 변명으로는 어떤 개혁도 바라기 어렵다. 그래서 묻거니와 보충수업의 방향이 옳았다면 폐지하지 말았어야 하고, 방향이 틀렸다면 결코 재개해서는 안 될 것 아닌가? 학교를 교실 아닌 공사판으로 만든 소동이 학급 정원 35명을 맞추기 위한 것인지, 그 '위업'을 임기 내에 마치기 위한 것인지는 누구보다 교육부 관리들이 잘 알 터이다. 그것을 어찌 과정의 무리쯤으로 얼버무릴 셈인가?

유감스럽게도 교육은 역대 정권의 '깜짝 상품'이었다. 김영삼(金泳三)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교육개혁위원회를 설치했고, 김대중(金大中)정부는 교육부 장관을 교육인적자원 부총리로 격상시켰다. 그것으로 무엇이 달라졌는가? 바꾸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을 때 바꾸는 것이 개혁이고, 바꿔야 할 이유가 있어야만 바꾸는 것이 보수라는 우스개가 있다. 전교조의 개혁에 상당한 희망을 거는 나이지만, 교육부의 하도 잦은 변덕에 때로는 '보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