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北 핵합의 준수 인증' 보류 美, 對北 잇단 강경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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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는 대(對)의회 '인증(certification)'을 유보하기로 미국이 20일 결정한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또 다른 대북강경책 신호로 풀이된다.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국방부의 핵태세 검토(NPR)보고서에 이어 제3탄인 셈이다.

미 의회는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미국이 북한에 매년 지원하는 50만t의 중유 예산 집행에 앞서 북한의 기본합의 이행을 인증할 것을 행정부에 요구하고 있는데, 부시 행정부가 이를 유보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인증 유보에도 불구하고 중유 지원은 계속하기로 했다면서 인증 유보는 북한의 합의 이행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지, 정책변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인증 유보는 북한의 핵사찰 수용을 둘러싼 북·미간 새로운 충돌과 제네바 합의 파행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클 전망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매년 인증을 해왔고 부시 행정부도 지난해 1월 출범 이후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관리들은 의회증언이나 기자회견 등에서 이를 확인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인증 유보는 북한의 합의 이행 여부를 판단할 충분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북한의 핵활동에 대한 정보와 핵사찰 일정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네바 합의에 따르면 북한은 경수로 핵심부품이 인도되기 전 과거 핵활동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받도록 돼 있다. 플라이셔 대변인은 부품 인도시기를 2005년으로 잡고,사찰 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3~4년으로 정했다. 이런 계산에 따라 이제 북한이 핵사찰에 응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특별사찰을 통해 북한의 핵활동 실체를 규명할 생각인 미국이 인증 유보라는 새 카드로 북한에 핵사찰 수용압력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다른 논리로 맞서고 있다.경수로 공사의 지연으로 핵심부품 인도가 언제 될지 모르는 상황인 데다 핵사찰 소요시간도 미국의 주장처럼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니 지금 당장 사찰을 시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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