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편의' 우선 고려하는 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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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 뉴욕주 타판의 한 주택가를 지나가다 보면 '청각장애 아동 거주지역(deaf child area)'이란 교통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이곳 길가에 청각장애 어린이가 살고 있습니다. 클랙슨을 울려도 듣지 못하니 어린이가 나타나면 무조건 정차해 주세요"라고 당부하는 표지판이다.

미국 내 골프장에서는 시각장애인이 골프를 치러 오면 앞팀과 뒤팀을 내보내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골퍼가 안전하게 속칭 '임금님 골프'를 치도록 배려한 것이다.

시각장애인 골퍼는 "2시 방향을 향해 1백20야드 정도만 날리면 그린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캐디(대부분 아들이나 남편 등 가족이 대신한다)의 조언에 맞춰 비록 앞은 볼 수 없지만 골프공을 힘차게 때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여러 주(州)에서는 쇼핑센터나 음식점 등에 있는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에 일반인이 잠깐이라도 주차할 경우 에누리없이 1백달러 이상의 가혹한 벌금을 매긴다. 주위의 따가운 눈총까지 덤으로 받는다. 미국의 인도(人道)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인도가 끊기는 지점이나 건널목 진입부 등을 턱 대신 완만한 경사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건물이 버튼만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장애인 전용 출입구를 두고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도착한 층을 알리기 위해 설 때마다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는 엘리베이터는 구식이 돼버렸다. 층을 나타내는 엘리베이터 안의 버튼을 점자로 처리해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층을 누르고 도착 안내방송에 따라 내리도록 유도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휠체어 시설을 만들어 장애인만을 위한 별도의 예배공간을 마련한 교회도 상당수다.

미국이 장애인에게 이처럼 각별한 신경을 쓰는 것은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인식이 워낙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장애인들도 자긍심과 함께 '우리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의식을 기르게 된다. 장애인 처우는 국가·국민의식 수준의 척도라 한다. 미국도 곳곳에서 문제점이 눈에 띄는 나라지만 장애인에 관한 한 배울 점이 아주 많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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