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부 : 노무현 대안론 > 대중적 인기 업고 '다크호스'로 : 개혁 이미지 강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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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 국민경선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노무현 후보의 활약이다. 그는 울산과 광주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종합득표 순위에서도 2위를 달리고 있다. 당초 그가 목표로 했던, 이인제 후보와의 양자대결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그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노무현 대안론'은 날개를 달게됐다. 동시에 盧후보에 대한 본격적 검증도 시작되는 분위기다. 盧후보의 경쟁력과 한계, 정책을 집중 해부한다.

"왜 그렇게 고스톱을 구박하는 거지요?"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고스톱 예찬론'을 편 일이 있다. 도박은 반대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배우고 즐기는 놀이를 백안시할 필요가 없다는 논지였다. 고등학교만 나온 변호사라는 입지전적인 경력과 함께 그의 의식 자체가 서민적이라는 점은 盧후보의 큰 정치자산 중 하나로 꼽힌다. 한나라당에서 경계하는 대로 대선구도를 '귀족과 평민' 대결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노무현 돌풍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축은 '영남후보론'에 대한 당내의 기류변화다.

그는 최근 일부 방송사의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안이기는 하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의 양자대결시 다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경선 초반 '호남·충청 연합 필패론''정체성 논란'을 승부수로 띄우고,한화갑(韓和甲)후보측이 이 주장에 가세하면서 '이인제(李仁濟) 대세론'에 잠시 제동이 걸리는 틈을 타 급속도로 '대안론'을 확산해 나간 결과다.

때마침 박근혜(朴槿惠)의원의 탈당에 이어 한나라당이 내분에 휩싸이면서 '노무현으로 영남표를 흔들 수 있다'는 기대심리도 작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진보적 정책과 개혁적 노선으로 전통적 민주당 지지세력인 호남과 젊은 층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한 것도 돌풍의 배경이다.

그는 1990년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합당을 거부했고, 91년 DJ의 민주당에 합류했다.영남 출신이면서 계속 민주당에 머물면서 끈질기게 부산을 두드렸다. 부산 선거에 네번 출마했지만 88년 13대 총선 때 YS의 통일민주당 후보로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선했다. 그의 오늘이 있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0년 16대 총선 때 부산에서의 패배였다.

그 직후 그에 대한 동정론과 지지가 인터넷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고 적극적인 자원봉사자 그룹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이 구성됐다. 또 '동서통합'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거머쥘 수 있었고,소신있는 정치인으로 인식될 계기를 마련했다.

천정배(千正培)의원은 "정치인들에 대해 서민들이 갖고 있는 원론적 정치불신을 盧후보가 흔들고 있는 양상"이라며 "서민대중의 의식을 갖고 정말로 서민을 위해 노력해 줄 만한 사람이 아니냐는 신뢰가 싹트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반대자들로부터 '선동가'라고 비난받을 정도로 감각적이고 설득력을 겸비한 화법을 구사한다. 라이벌인 이인제 후보조차 지난 15일 광주 MBC 토론회에서 盧후보를 가리켜 "대중성이 강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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