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기업 쇠퇴 4단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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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발전노조 파업이 너무 장기화하고 있다.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에 관한 법률은 이미 지지난해 12월에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전력의 분할과 민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1993년부터 논의가 있었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여야가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기업구조조정이나 민영화와 같은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대법원도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또한 발전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안까지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불법 파업이 20일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하고 있는 정부와 여기에 동조하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참으로 무책임하다.

여기에서 다시 민영화의 필요성에 대해 길게 논의할 필요는 없다. 다만 민영화를 반대하는 발전노조의 주장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첫째, 기간산업의 민영화는 안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미 항공·해운·통신·정유 등의 기간산업이 민간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외국에서는 우편·교도소·철도 등도 민간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둘째, 민영화하면 요금인상이나 독점의 폐해가 있다고 하나 이는 사실과 배치된다. 민영기업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국유기업의 민영화를 중요한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셋째, 국유기업이 임금이 낮기 때문에 민영화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노조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를 착각하고 있는 주장이다. 노조들이 진정으로 조합원의 복지를 위한다면 민영화와 효율화를 통해 조합원의 급여를 높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전력산업을 민영화하면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거나 재벌한테 기업이 넘어간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민영화를 하면 정부가 돈을 받게 될 것이고, 그 돈은 국내에 남아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발전노조의 불법 파업은 국유기업의 비효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유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어떤 과정을 통해 효율성을 잃게 되는지 살펴보자. ABC사는 어떤 공공성이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 및 다른 국유기업의 출자에 의해 설립된 가상의 회사다. 출자자들은 이 중요한 국가적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처음에는 공채를 통해 유능한 사장을 그 자리에 앉히고 경영권을 준다. 그러나 1년이 못가 정부기관이나 정치권은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 사람들을 이 회사에 임원으로 내려보내거나 심지어는 임기가 만료되지도 않은 사장을 갈아 치운다.

사장이나 주요 임원이 단칼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자기들 목숨도 파리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고 느끼는 직원들은 자구책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이는 지극히 정당한 자기 방어책이다. 노조는 점차 강성이 되고 임금과 근로조건의 협상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 낙하산 인사로 사장 자리에 앉은 전직 관료나 정치인은 노사분규 없이 넘어가야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조의 요구에 앞뒤로 양보하게 된다. 이 단계가 되면 우리의 ABC사는 노사담합(談合) 단계의 국유기업이 되면서 경영효율성은 하락하게 된다. 사실 국유기업의 임금협상은 노사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재미 없는 게임이다.

이 단계의 공공기관에서는 사장과 임직원은 힘을 합쳐 회사를 잘 되게 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고, 모두 바깥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장은 정치권에 줄을 대야 하고, 노조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노동단체와 손을 잡거나 포섭되게 된다.

이런 기업 가운데 정부의 감독과 감사를 받는 기업은 그나마 어느 정도의 규율이 유지되나 그렇지 않은 공공기관은 완전히 노조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이 마지막 단계에 와있는 공익기관도 국내에 상당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조직은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할 수 없으며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된다. 공공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생긴 우리의 가상의 ABC사는 불행하게도 낙하산 인사와 노조결성, 그리고 노사담합을 거쳐 노조접수의 네단계를 지나면서 국민경제의 암적 존재가 되고 만다. 바로 이것이 국유기업의 민영화가 시급한 본질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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