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案'과 '大勢' 盧 1등하면 영남후보론과 충돌 '기득권 포기'는 또다른 후보 견제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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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무현 바람이 불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어떤 여론조사에선 이회창 총재보다도 앞섰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은 이인제 대세론의 약화가 시발이다. 당 일각의 이인제 필패론이 그것을 낳았다. 이인제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영남의 이인제 거부론 때문이다. 결국은 영남이 문제다. 정계개편론도 실은 영남후보론이 요체다. 영·호남의 표를 묶자는 발상이다. 전라도가 공천한 경상도 후보를 통해서다. 그래야 이회창을 꺾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정계개편을 통해 이인제를 빼돌리자는 것이었다.

그게 김윤환 민국당 대표의 구상이다. 박근혜 의원의 탈당도 그 구상과 관련이 있다. 한나라당 일부의 이탈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노무현 고문이 1등을 했다고 치자. 그는 金대표가 말한 영남후보가 된다. 명실공히 민주당이 공천한 경상도 후보다. 그러나 金대표의 구상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金대표가 생각한 영남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엉뚱한 영남후보다. 그러니 정계개편 문제도 원점으로 돌아온다. 명분도 반감된다.

오히려 개편의 주도권은 盧고문이 쥐게 된다. 그도 이미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후보가 되면 정계개편을 하겠습니다."

"어떤 개편인가요?"

"한나라당의 반(反)호남 지역주의를 해체해야지요."

자신이 영남 출신이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자민련은요?"

"정책이 정계개편의 1차 기준입니다. 자민련은 그 다음입니다."

"그렇다면 통합신당의 대통령후보는 새로 뽑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새로 뽑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것이 대의라면 따르겠다고 했다. 박근혜 의원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렇다면 목적은 뻔하다. 그것을 통해 다른 영남후보의 사후 등장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이다. 박근혜 변수를 거기서 차단하겠다는 생각이다.

박근혜 의원에게 물어봤다.

"盧고문이 뭐라 하든 민주당 사정엔 관심없어요."

한마디로 잘랐다. 노무현 변수를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뉘앙스였다.

김윤환 대표도 "노 코멘트"였다.

당황한 건 한나라당 쪽이다.

"노무현 후보라면 아무래도 영남표를 잠식하겠지요." 맹형규 의원의 얘기다.

고흥길 의원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이인제가 편하다는 견해였다.

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노무현도 약점이 많은 사람이오."

최병렬 부총재의 지적이다.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노무현 바람. 그것은 권위주의 파괴의 바람이다. 학력·경력·지역의 권위를 파괴했다. 기득권의 권위마저 스스로 부수려 한다. 그것이 바람을 몰고온 것이다. 盧고문 스스로도 그 점을 인정한다. 반(反)권위주의가 반(反)대세론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바람은 반사이익이란 측면도 있다. 때문에 일시적이라 볼 수도 있다. 특히 바람의 건너편엔 보수주의가 서 있다. 그들은 노무현 바람을 파괴주의라 여길 것이다. 지금까지는 때가 아니어서 조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보수의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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