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도 못해본 40대 행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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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은행의 민영화가 최우선 과제다. 이후 지주회사 설립 등을 통해 대형 금융기관으로 키우겠다." 지난 12일 조흥은행장 후보로 선임된 홍석주(洪錫柱) 상무는 '젊은 행장'이라는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은행의 진로를 명확히 설정했다. 올해 만 49세인 洪후보보다 나이가 많은 조흥은행 직원이 2백여명에 이른다. 그는 "나이가 인사의 기준이 될 수 없다"며 "능력 위주로 인사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서울대 동기동창인 하영구 한미은행장에 이어 두번째 40대 은행장이 된다. 지난해 한미은행의 외국계 대주주가 시티은행 출신인 河행장을 선임할 때보다 이번 경우가 더 파장이 크다. 1백5년의 최고(最古) 역사를 자랑하는 조흥은행에서 40대 상무가 행장으로 선임된다는 소식에 은행권이 발칵 뒤집혔다. 洪후보는 29일 열릴 정기 주주총회에서 은행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킹메이커에서 킹으로

"저는 2~3년 후에나 은행장 후보 면접을 신청하겠습니다."

지난 11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흥은행 행장추천위원회. 위성복 행장을 연임시키기 위한 '킹메이커'로 뛰었던 洪상무는 면접 시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날 금융당국이 魏행장의 연임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통보하는 바람에 갑작스레 면접장에 불려온 상태였다. 다음날 洪상무는 은행장 후보로 뽑혔다. '차기 은행장은 젊고, 국제 감각이 있으며, 개혁적이어야 한다'는 주문을 해왔던 정부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13일 洪후보는 하영구 한미은행장의 전화를 받았다. 둘은 지난해 9·11 테러 때 미국 뉴욕에서 함께 발이 묶이기도 했다. "그동안 혼자 40대 행장이어서 힘들었는데 잘 됐다"는 河행장의 축하에 洪후보는 "행장 선배로서 비법을 전수해 달라"며 웃었다.

1998년 리스크 관리실장이었던 그는 2000년 기획부장으로 승진했다. 1급 고참 부장이 맡아온 자리가 2급이었던 洪후보에게 덜컥 안겨진 것. 그는 영업을 해봐야겠다며 지점 근무를 희망했다가 윗사람에게 "은행의 운명이 달려 있는데 그런 말을 할 때냐"라는 야단을 맞았다. 결국 그는 지점장을 해보지 못했다. 1년 후인 지난해 2월 전격적으로 상무로 발탁됐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그는 은행장으로 내정됐다.

#와튼스쿨서 9.11까지

83년 가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월 스트리트 저널을 보던 홍석주는 깜짝 놀랐다. 영동개발진흥 사건으로 조흥은행장이 구속되었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MBA(경영학석사) 과정에 입학한 지 2개월 만의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76년 조흥은행에 입행한 그가 해군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81년 복귀할 때부터 꿈꿔온 미국 유학이었다. 안간힘을 써 조흥은행 해외 연수생으로 뽑혀 이룬 꿈이었다.

그 전 해의 장영자 사건에 이어 연속 두 명의 은행장이 구속되면서 은행이 쑥대밭이 되었다. 해외 지점들이 줄줄이 폐쇄되는 판에 해외 연수생을 챙길 리 만무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은행에서 월 8백달러의 생활비는 꼬박꼬박 보내줘 洪씨는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귀국 후 국제·기획·재무 등 핵심 부서를 돌았으나 MBA 연수 때문에 승진은 늦은 편이었다. 동기보다 1년반 늦게 차장으로 승진했다.

외환위기 시절 그의 실력이 십분 발휘됐다. 퇴출 직전까지 몰린 은행을 구해내기 위한 외자유치 및 합병 추진작업의 실무 책임자였다. 매일 밤늦게 퇴근하던 그가 어느 날 일찍 들어가자 부인이 "은행이 무너지겠네"라고 꼬집을 정도로 일에만 매달렸다.

洪후보는 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98년 여름 위성복 당시 전무와 외자유치를 위해 뉴욕에 갔다. 필요한 돈은 2억달러였다. 다우지수가 9천을 넘으면서 활력에 넘치던 뉴욕에서 2억달러를 구하지 못해 은행이 문을 닫을 처지라고 생각하니 화도 나고 분하기도 했다."

외자유치를 위해 출국하려는데 관악지점의 직원 대표가 공항까지 달려와 '꼭 성사시켜 달라'는 직원들의 글이 적힌 편지와 격려금을 가져올 정도의 상황이었다.

합병 작업도 쉽지 않았다."합병을 논의하려고 여의도 장기신용은행 본점에 들어서는데 대학 동기인 장기신용은행의 강국신 비서실장이 오세종 행장과 함께 다른 약속이 있다며 바람을 맞혔다. 얼마 뒤 장기신용은행과 국민은행이 합병 발표를 했다" 洪후보는 당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洪후보는 옛 5대 시중은행(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 중 조흥은행이 유일하게 정체성을 유지하기까지의 고통스런 작업의 실무를 줄곧 맡아왔다.

지난해 9월 11일 洪상무(당시)는 30분 차이로 화를 면했다.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에 있는 투자자를 만나기 위해 魏행장과 함께 출발하기 직전에 약속이 연기된 덕분이었다.

魏행장은 지난해 내부에서는 洪상무를, 외부 출신으로는 지동현(44) 상무를 행장감으로 키우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누가 키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큰 거지. 내가 행장이 됐더라도 다음 행장으로 그를 밀었을 것이다." 洪후보와 경쟁하다가 사퇴한 이강륭 전 부행장의 평가다.

#아무래도 이사가야

서울 서초구 반포4동 미도아파트 303동 32평 아파트에 사는 洪후보는 집을 옮길 생각이다. 좁아서가 아니라 이웃들이 불편할 것 같아서다. 86년 조흥은행 직원주택조합 아파트로 지어진 미도아파트의 주민 상당수가 아직도 조흥은행 직원들이다. 고교생인 딸 때문에 고민 중이다.

중학교 교사였던 부친의 근무지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완도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서중을 졸업하고 경복고에 들어갔다. 이계안 현대캐피탈 회장이 고교 동기다. 부친이 교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벌이다 실패해 가계가 어려워졌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군 미필자를 뽑는 곳은 조흥은행·삼성그룹 정도였다. 은행에 들어온 뒤 대학원에 입학해 군 복무를 늦췄던 것도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부인은 "성실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라고 남편을 평가했다.

글=허귀식·최현철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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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석주는 누구

1953년 광주 생

1971년 경복고 졸업

1976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76년 조흥은행 입행

1985년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1986년 런던지점 과장

1993년 종합기획부 과장

1997년 종합기획부 차장

1998년 리스크관리실장

2000년 기획부장

2001년 2월 상무(기획재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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