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의 재테크 컨설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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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경제 우화집'이란 꼬리표를 단 이 책은 기획상품임에 틀림없다. 일본 전래동화 11편을 각색하는 '얼굴마담'역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스타 작가 무라카미 류에게 맡기고, 각 우화에 딸림박스 물로 처리되는 투자 조언은 애널리스트들에게 역할분담을 시켰다. 삽화가 없는 우화책은 없으니 장 자크 상페 풍의 수채화로 분위기를 잡아 선보인 책이 바로 『할아버지는 산에 돈 벌러 가시고』이다.

사람에 따라 속 보이는 상업출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밉지 않게 읽히는 것도 사실이다.

고전적 책의 개념에 매달리지만 않는다면, 대중에게 밀착하려는 책의 변신은 일단 무죄다. '유쾌한 상상력과 경제지식의 만남'이란 책 광고문도 허풍만은 아니다 싶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기간 짭짤하게 재미를 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이후 '스토리가 있는 경제경영서'는 출판의 한 흐름이니까.

서술은 21세기 버전으로 각색한 동화 한편에 투자의 지침을 섞는 비빔밥 방식이다. 제2편 '복숭아 도령'편을 보자. 전래동화 버전은 할아버지가 나무하러 산에 간 사이 빨래하던 할머니가 냇가의 복숭아를 건져 그 안에서 건진 아기도령의 스토리다. 장성한 도령이 도깨비 소굴에서 금은보화를 챙겨 큰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 뼈대만 남긴 채 무라카미는 재테크 스토리로 변주시킨다.

우리 시대의 복숭아 도령은 미모의 탤런트 사생아로 설정된다. 씨를 심은 애비는 과학자. 한데 그 도령은 실패작이었다. 용모는 과학자를, 머리는 멍청한 엄마를 닮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실망하지 않았다. 남다른 투자안목 때문이다. 복숭아 도령의 스토리를 책으로 써 떼돈을 벌기 때문이다. 이 동화의 뒤편 애널리스트의 한 말씀을 들어보자."미래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를 비교하는 사고방식이 투자의 기본이다."

조우석 기자

NOTE

전래동화에 딸린 투자 지침은 두쪽 내외 분량. 이 정도의 정보량은 대단한 게 아니다. 허나 솜씨를 인정할 만한 무라카미의 각색은 그 자체로 흥미롭게 읽힌다. 서문에 그가 쓴 말은 우리시대 지식정보사회의 이념에 대한 은유이자 선동이다."정직하게 살면 언젠가 행복해진다는 희망의 전래동화와 달리 요즘 세상에선 지식과 정보야말로 재산을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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