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쏠리는 아태재단> 정부要職 배출통로 'DJ 친위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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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태재단에 대한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수동(李守東·71·구속)전 아태재단 상임이사가 이용호(李容湖)씨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진 데 이어 李씨의 집에서 '언론개혁'문건 등이 발견되면서 인사개입·국정개입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아태재단을 '현 정권 비리의 온상' '판도라의 상자'로 지목했다. 李씨가 김대중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해온 '집사'인 데다 金대통령의 차남인 홍업(弘業·아태재단 부이사장)씨와 함께 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해온 점을 들었다.

아태재단은 金대통령의 정계복귀(1995년)의 발판이었다. 92년 정계은퇴를 선언한 金대통령은 94년 아태재단을 설립, 이사장직에 취임하면서 정치 재개를 준비했다. "퇴임 후 재단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金대통령의 뜻에 따라 지난해 동교동 사저(私邸)옆에 새로 재단 건물이 들어섰다.

학술단체로 출발한 아태재단이 정치단체, 특히 'DJ의 정치 사조직'이란 구설에 휘말려온 것은 이런 金대통령과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현 정권 출범 후엔 정부요직이나 각종 산하단체 등에 인재를 배출하는 '통로'로도 작용했다. 아태재단 출신으로 요직에 등용된 인사는 수십명에 달한다.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아태재단 사무총장, 신건 국정원장은 서울시지부장을 지냈다. 유종근 전북도지사, 백경남 전여성특위위원장, 오기평 세종연구소 이사장, 황용배 마사회 상임감사(구속), 박태영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 한상진 정신문화원장, 손숙 전 환경부장관도 아태재단 출신이다.

나종일 영국대사와 민주당 이강래의원, 김상우 국제안보대사 등은 아태재단 연구위원을 거쳐 정치권에 나온 경우. 박금옥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장성민 전의원은 각각 아태재단 비서실차장·공보비서를 지냈다. 현재 재단 후원회장인 민주당 최재승의원이나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남궁진 문화관광부장관과 민주당 설훈의원 등은 DJ의 비서출신이다.

이 때문에 아태재단은 "민주당 동교동계와 함께 현 권력의 양대 축을 이뤘다"는 말을 들어왔다.

또 다른 의혹은 돈 문제다. 외교통상부에 보고한 아태재단의 후원금은 지난 94년부터 2000년까지 총 2백13억원. 이 후원금을 둘러싸고 '공천헌금설' 등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총선·대선 때면 의원·지구당위원장들에게 후원금 모금 신청서가 배달됐다. 특히 공천을 앞두고는 대부분 후원회 쿠폰을 사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95년 지방선거 때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된 최선길 노원구청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재단에 5천만원의 후원금을 낸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시 교육위원 선거 당시 아태재단 후원회 부회장이던 金모 서울시의회 부의장은 교육위원 후보들을 밀어주는 대가로 후원금을 요구한 게 문제가 돼 불구속 기소됐다. 때문에 "후원금을 가장한 사실상의 공천헌금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수동씨는 97년 대선 당시 'DJ비자금'사건에서 DJ의 친인척을 제외하고 최측근 중에서 유일하게 비자금 계좌를 갖고 있었던 인물이다. 한나라당이 아태재단을 '비자금 관리본부'라고 공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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