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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획 한획 붓 그림 "잡념은 저리 가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3면

지난해 '달마야 놀자'를 히트시킨 이준익(43) 씨네월드 대표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사방 벽면에 붙여진 여러 형상의 동양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수묵 풍경화, 목이 잘려나간 한 남성의 동체(胴體)를 부각한 인물화 등이 눈에 띈다.

그간 씨네월드에서 제작한 '간첩 리철진''아나키스트'등의 영화 포스터와 섞이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사무실 한켠에선 문방사우가 보인다. 국방색 군용담요 위에 화선지·붓·벼루·먹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대표가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다. "지난 15년간 충무로 주변에서 열한번 이사를 했지만 이것들은 항상 가지고 다녔어요. 고교 시절부터 손때가 묻은 것들이거든요."

대표는 1주일에 한번 정도 붓을 든다. 영화 작업이 잘 풀리지 않거나, 골치아픈 일이 생길 때 화선지를 찾는다고 말했다. "혼탁한 머리를 맑게 하는 데 그림이 최고입니다. 정신을 집중해 한획 한획 그려나가면 잡된 생각이 금방 사라지죠. 또 과거의 저를 돌아보면서 현재의 제 자신을 다잡는 계기가 됩니다."

눈길을 돌며 출입구 쪽을 보니 제법 심각한 얼굴의 인물화 석 점이 들어온다. 황폐해진 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하거나, 각종 번뇌를 떨쳐내 듯 함성을 지르거나, 주먹을 불끈 쥐고 세상에 전쟁을 선포하는 듯한 모습을 그린 소품 연작이다.

"1984년 제대 직후 그린 것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앞날이 막막했고, 또 사회적으로 군사정권이 득세했던 때라 당시의 답답했던 심정, 그리고 결코 현실에 무릎을 꿇지 말자는 각오를 표출해 보았습니다."

그림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여느 화가에 못지 않게 느껴진다. 알고 보니 대표는 세종대 회화과 출신. 대학 때만 해도 영화란 직업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밥벌이' 수단이 없었어요. 예술은 순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대신 노동판·외판일을 전전했습니다. 그러기를 몇 년, 결국 아는 선배의 주선으로 서울극장 선전부장 겸 도안사로 취직하면서 영화계와 연을 맺었어요."

그는 영화를 만난 게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그의 가슴을 짓눌렀던 화혼(畵魂)을 스크린에서나마 풀었기 때문이다.

"화선지나 필름이나 종착역은 같지 않을까요. 영화를 통해 청춘의 불타오르던 표현욕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는 요즘 들어 그림에 대한 애착이 더 생긴다고 했다. 연륜에 따라 자연과 사물이 달라보이듯 우리 산하를 순례하며 그 속에 담겨진 역사의 흔적과 사람의 땀내음을 드러내는 게 삶의 큰 목표라고 덧붙였다.

"물론, 당장 이룰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분명 해내고 말 겁니다"고 말하는 그를 보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영화사 대표야, 아니면 진짜 화가야. "그림이든, 영화든 자신이 보고 느낀 것만큼 표현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그의 말에 의문이 풀렸다. 그에게 영화와 그림은 한 얼굴의 두 표정인 것. 물론 앞으로도 생계는 영화로 꾸려가야겠지만….

글=박정호,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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