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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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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러시아를 상징하는 술은 단연 보드카다. 보드카는 물을 뜻하는 러시아어 '바다(voda)'에서 유래했다. 물처럼 투명하고 특별한 맛이 없으며 냄새가 없는 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흔히 무색(無色)·무미(無味)·무취(無臭)의 3무(無)의 술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보드카에는 황제의 술, 권력의 술이라는 별명이 있다.

12~13세기 유럽에서 독주(毒酒)의 생산은 곧 그 나라 화학기술의 수준을 의미했다. 이 이전까지는 대체로 낮은 도수의 과실주가 주종이라 독한 술이 드물었다. 때문에 독주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 높다는 것을 상징했다.

보드카가 러시아 민중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15세기 무렵이다. 이때부터 러시아 황제들은 보드카에 관심을 본격적으로 쏟았고 표트르 대제는 보드카의 생산과 판매를 황제의 직접 관할 아래 두었다.

황제들은 보드카의 개량에도 각별한 관심을 쏟아 국가 최고의 화학자들을 이에 동원했다. 원소주기율표를 만들어낸 멘델레예프도 예외가 아니었다. 1865년 '알콜과 물의 혼합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그는 오늘날의 보드카 기전을 만들고 알콜도수도 40도와 45도 두 가지로 단순화해 보드카 발달에 획기적 공헌을 했다.

보드카 면허라는 주요한 재정수입원을 확보하게 된 러시아의 역대 황제들은 이를 활용해 황제권과 중앙집권적 국가조직의 권위를 확립했다. 하지만 황제의 권한이 약화되면 어김없이 밀주(密酒)가 등장했고 밀주의 성행은 곧 황제권의 약화를 상징했다.

공산혁명 후 소련 공산당은 보드카를 다시 국영생산체제로 유지했다. 하지만 공산당의 통제가 약화되면서 소련에는 '스톨리치나야''스탈로바야'등 공식 보드카보다 '사마곤'으로 불리는 밀주가 더 유행했다.

소련 말기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안드로포프·고르바초프 등은 밀주의 단속과 금주령 등을 내렸지만 러시아인들의 반발만 샀다.

민주 러시아를 탄생시킨 보리스 옐친은 1992년부터 보드카 면허를 민간에 개방했다. 국가권력의 약화기로 상징되는 이 시기에 국가 소유 보드카 상표들도 무더기로 민간에 넘어갔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는 민간에게 넘어간 보드카 상표의 재(再)국유화를 요구하고 있다. 보드카가 러시아 역사에서 집권세력의 권력을 상징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푸틴 정권의 보드카 상표 반환 소송은 러시아에서 다시 국가권력과 통치권의 힘이 강화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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