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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레베르테 코드 읽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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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37면 '이윤기의 레베르테 코드 읽기'서 계속

문예지에 발표되는 소설들은 아무래도 좀 '안을 향한 문학' 같고, 최루(催淚)의 멜로 소설은 아무래도 '너무 밖을 향한 문학' 같다. 나도 문예지에 글을 쓰지만, 문예지 기고가들이 대중작가들 우습게 아는 우리 문학 풍토(내부 거래의 악습 비슷한)는, 대중작가들 이상으로 역겹다. 안팎을 향한 문학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을까. 체질 개선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데. 번역 연감 『미메시스』에서 페레스 레베르테라는, 스페인 출신 작가의 다음과 같은 당돌한 주장을 읽으면서 내가 무릎을 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는 소설가다. 나는 문학 이론에 관심이 없다… 문학의 예술적 측면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 역시 나의 소관이 아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라는 것들도 여느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존중을 받아야 마땅하다. 세상 물색을 도통 모르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학교 교육도 별로 받지 않고 열여덟 나이에 선머슴 같은 남자와 결혼해 매일 밥하고 빨래하고 장보고 청소하느라 열네 시간을 보내는 여염집 아낙에게 저녁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으라고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뒤마 클럽』과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은 바로 그 당돌한 주장을 펴던 작가 페레스 레베르테의 소설이다. 그는 문학의 예술적 측면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순수문학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린 것처럼 쓰고 있지만 그런 것 같지 않다. 그의 『뒤마 클럽』은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다. 뒤마의 텍스트를 이잡듯이 뒤지지 않고도 이런 패러디가 가능할까 싶다. 유럽 문학 전통의 구더운 뒷심이 과연 무섭지 않은가. 움베르토 에코가 뒤에서 작가 레베르테의 등을 토닥거리고 있는 것 같다.

『삼총사』의 작가 A 뒤마는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그리 무겁게 다루어지지 않는 대중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누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 열 권을 꼽으라면 나는 『삼총사』와 『몽테 크리스토 백작』과 『레미제라블』을 반드시 포함시킨다. 세권의 프랑스 작품 중 앞의 두 편이 뒤마의 소설이다. 『사람의 아들』이 그랬듯이 뒤마의 『삼총사』는 대를 물려가면서 연극과 영화의 원자재 노릇을 해왔다. 지난 40년 동안 내가 본 영화 『삼총사』만 하더라도, 진 켈리가 주연한 영화를 비롯해 다섯 가지가 넘는다.

두 세기 전의 소설가 뒤마의 부가가치가 마침내 『뒤마 클럽』에 이르는 것을 보라. 뒤마가 이루어낸 서사의 힘, 밖을 향한 문학의 힘이다. 뒤마의 소설만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뒤마 패러디라고 할 수 있는 『뒤마 클럽』도,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아홉번째 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찍은 모양이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에서는, 플랑드르 화가의 그림을 복원하던 중에 우연하게 발견되는, <누가 기사를 죽였는가>, 이 라틴어 문장 하나로 평지풍파가 인다. 그림에 그려져 있었다는 서양 장기 두는 장면이 상징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장미의 이름』의 숨바꼭질을 방불케 한다. 미국 언론은 까놓고,'『장미의 이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서평을 하고 있을 정도다. 하필이면 플랑드르인가?

플랑드르는 결코 하나로 통합될 수 없는 두 민족과 두 땅덩어리의 상징이다. 지금은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나뉘어 있는 플랑드르는 해체와 통합을 되풀이해온 유럽 역사의 한 단면이다. 하필이면 서양 장기 두는 장면인가? 나는 엉뚱하게도 플랑드르에서 한반도를 떠올린다. 한반도를 가지고 이만큼 해박한 역사성과 박람강기를 구사할 수 있는 작가, 이만한 평지풍파를 일으킬 작가를 보유하고 있는가? 함부로 대중소설 운운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영 불편하다. 이 소설 역시 짐 맥브라이드에 의해 영화화되었단다. 레베르테의 소설이 지닌, 밖을 향한 힘이다. 밖을 향한 힘, 혹은 안팎을 향한 힘… 아무래도 우리 문학이 좀 오래 들고 있어야 할 화두 같다.

▶소설가이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번역했던 번역가 이윤기씨가 보내온 글은 신간 『뒤마 클럽』에 실렸던 글 '서사의 힘, 밖을 향한 문학의 힘'을 토대로 자신이 개고(改稿)한 글입니다. 이 글은 『뒤마 클럽』외에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을 함께 언급하면서, 국내 문학동네의 문제점까지를 훑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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