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의원 '민해전 고문·조작' 공방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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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 1992년 국가안전기획부 등에서 조사받으면서 실제로 고문당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시 수사 및 재판 기록이 결정적인 자료다. 검찰이 당시 기록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의원 사건에 대한 수사 및 재판 기록에는 '고문을 통한 사건 조작'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기록을 검토한 결과 고문이나 사건 조작 등과 관련된 말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당시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들조차 물증이 명백하고, 피의자들이 자백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곤혹스러워했다"고 밝혔다. 또 유신 시절에는 고문이 간간이 자행됐지만, 수사 시점이 민주화가 상당히 진척된 노태우 정권 말기라는 점에서 고문에 의한 자백 강요의 개연성이 거의 없다고도 지적했다.

당시 이 의원에 대한 항소심 재판을 맡았던 김선중 변호사도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에 의해 이뤄졌다면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능력이 완전히 부인되는 중요한 쟁점"이라며 "2심 판결문에 이 같은 내용이 없는 것으로 봐서 적어도 법정에서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법정에는 재야단체에서 나온 방청객 등이 운동권 노래를 부르고, 간간이 야유를 보내는 등 재판부가 위협을 받는 분위기였다"면서 "피고인이 만약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면 큰 사회적 이슈가 됐을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한 사람은 장기표씨뿐이었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태도였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에 열린우리당은 12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 등이 92년 11월 발간한 '이른바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이란 제목의 자료집에 있는 이 의원 관련 내용을 고문.조작의 유력한 증거 자료라고 제시했다.

이 책자에는 "이철우(서울시립대 84학번)의 경우 연행(92년 9월 14일) 후 2~3일 동안 주먹 쥐고 물구나무서기와 무차별 구타를 당했으며, 변호인에게 양손 약지 윗부분에 약 1㎝의 딱지 자국의 고문 흔적을 보여주었음"이라고 기술돼 있다.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은 "이 의원이 혹독하게 조사받는 과정에서 반성문을 썼으며, 이후 반성문을 쓴 사실 때문에 고문 사실을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과 검찰 관계자들은 열린우리당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93년 7월 8일 이 의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내려지기 전까지 이 책자를 근거로 '고문.조작설'을 주장한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 의원은 "고문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은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유로 원 판결의 증거물 등이 위조 또는 변조됐다는 것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되거나 검사나 경찰관이 해당 사건 수사와 관련해 가혹행위 등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된 때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이 의원의 고문 피해 주장만으로는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병주.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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