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마다 '새 싹'돋았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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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기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청신호가 늘고 있다. 산업현장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수출이 아직 살아나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지만 가장 큰 수출시장인 미국의 경제도 빠른 속도로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본격적인 경기회복 국면으로 보긴 어려운 상황"(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하반기에는 수출이 증가세로 바뀌면서 내수와 수출이 함께 좋아지는 본격적인 회복이 가능하겠지만 상반기까진 내수 위주의 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란 진단이다.

그러나 2분기부터는 수출도 증가세로 돌아설 것(오석태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월 중 설비투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 증가하는 등 투자도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

때문에 상반기에 내수를 살리는 쪽으로 짜인 경제정책 기조를 서서히 바꿔야 할 때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저금리가 부른 자산효과=수출이 늘지 않는데도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저금리다. 저금리가 가계대출 증가→부동산 투자 증가→부동산 값 상승→건설투자 증가를 낳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자수입 감소→주식투자 증가→주가 상승→소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저금리가 여러 부작용도 낳고 있지만 경기에는 큰 동력(動力)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산업생산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2% 늘어나 2000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쓰러지는 기업도 급격히 줄었다. 지난 1월 중 어음 부도율은 0.06%를 기록해 2년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부도업체 수는 3백84개로 지난해 12월의 4백47개에 비해 14% 줄었다.

지방경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 생산은 대구·인천·전북지역의 경우 부진한 편이나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정보통신·자동차·조선 등의 수요 증가에 힘입어 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거나 임시직보다 정규직을 늘리려 할 정도의 회복세는 아닌 듯하다. 전철환 한은 총재는 "설비투자 지표가 지난해 11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으나 기업들이 설비투자에는 신중해 단기간에 크게 증가하기는 어렵다"며 "경기회복세가 이어지고 수출이 회복조짐을 보일 경우 설비투자 부진현상도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투자 회복은?=저금리와 함께 증시 호조, 기업 신용위험 감소,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대출 등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여건이 좋아진 것도 실물경제의 회복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은은 그러나 "내수만으로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데다 수출이 조기에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워 경기회복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는 수출이 여전히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 감소 폭이 줄어들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질적인 수출동향을 가리키는 하루평균 수출액은 지난달에 5억3천8백만달러로 지난해 6월의 5억5천만달러 이후 가장 많았다.

게다가 미국 경제가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어 수출 회복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골드먼삭스가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을 1% 감소에서 2.5% 증가로, 모건스탠리가 0.2% 감소에서 2.5% 증가로 상향 조정하는 등 미국이 예상보다 빨리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SK증권의 오상훈 투자전략팀장은 "수출과 투자의 회복상황을 봐가면서 내수 진작 위주의 경제정책을 조정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귀식·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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