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털리는 하와이 전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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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요즘 하와이 호놀룰루의 중심가 알라모아나 거리는 선수들을 비롯한 한국야구 관계자들로 북적거린다. 현재 하와이에서 전지훈련 중인 한국 프로야구팀이 네팀이나 되기 때문이다.

두산·한화·기아는 1월 중순부터 훈련을 시작, 40일을 넘어섰고 현대는 지난 3일 플로리다에서 하와이로 건너왔다. 선수만 2백명에 이르고 코칭스태프와 구단 관계자들까지 합하면 3백명에 가까운 인원이다. 이들이 모두 알라모아나 거리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보니 이 거리는 '코리아타운'으로 부를 만하다.

그래서 하와이의 시조(始祖) 카메하메하 대왕이 잠깐 이승으로 돌아왔다. 하와이를 찾아온 한국 야구인들에게 화려한 연회를 베풀기 위해서였다. 이 연회에서 카메하메하 대왕은 한국 야구의 발전을 기원한 것은 물론이고, 현재 하와이에서 훈련 중인 선수들에게 시상식도 가졌다.

▶용감한 시민상=양승호 코치·이혜천(두산)

이들은 지난달 1일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중 "도둑이야"라는 70대 동포 할머니의 비명을 듣고 뜨거운 시민정신을 발휘, 힘을 합쳐 백인 강도를 쫓아 할머니의 핸드백을 찾아주었다. 이들은 '자랑스러운 명예시민'으로 부를 만하다.

▶예절상=대니얼 리오스(기아)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또렷한 한국말로 인사하는 기아의 마무리투수 후보 리오스. 유창한 억양도 놀랍지만 낯선 한국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자세가 기특하다.

▶다이어트상=조현(한화)

1995년 LG의 거포로 주목받았던 그는 해태를 거쳐 군복무를 마친 뒤 이번 겨울에만 20㎏을 줄였다. 지난 가을 98㎏에서 지금 몸무게가 78㎏. 몸매는 홀쭉해졌지만 눈은 매섭게 빛난다. 일부 살찐 하와이언들에게 충분한 귀감이 된다.

▶두발(頭髮)단정상=이종범(기아)·송진우(한화)·차명주(두산)

이들은 모두 이번 캠프에 오면서 삭발, 이를 보는 하와이안들로 하여금 시원함과 청결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줬다. 모자만 벗으면 깨끗하게 반짝거리는 이들의 머리는 이제까지 하와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헤어패션이다.

▶현지적응 도우미상=최경환(두산)·손혁(기아)

미국에서 야구유학 경험이 있는 이들은 소속팀의 외국인 선수들과의 대화 창구가 돼 팀 분위기를 북돋운 것은 물론이고 휴식일이면 다른 선수들을 이끄는 관광가이드 역할까지 했다. 기특한 일이다.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한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원,투,스리,포…."

돌아보니 카메하메하 대왕의 회계담당 직속부관 '달러머니달라'가 돈을 세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네팀이 이번 전지훈련 기간에 하와이에 쏟아부은 경비는 적게 잡아 약 15억원. 카메하메하 대왕으로서는 화려한 연회를 베풀어주고도 잇속은 충분히 챙긴 셈이다.

미국 전체 평균보다도 생활비가 27% 비싼 관광지 하와이에 한국야구 네팀을 불러들여 실속있게 주머니를 털었던 것. 그 순간, 좀더 귀를 기울여 보니 가수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 가운데 '하와이는 미국땅…'이 나오는 부분에서 노래가 반복되고 있었다.

야구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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