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외교관들 ‘월드컵 향한 동심’ 격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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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객석에선 훌쩍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온통 밝은 표정이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 ‘맨발의 꿈’이 세계 각국 외교사절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유엔본부에서 상업영화의 시사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10일(현지시간) 열린 한국 영화 ‘맨발의 꿈’ 시사회에 참석한 인사들. 왼쪽부터 제작사 쇼박스 유정훈 대표, 박인국 유엔대사, 소피아 보르지아 동티모르 유엔대사, 김태균 감독, 주연 배우 박희순씨.

영화의 무대는 유엔에 의해 21세기 첫 독립국이 된 동티모르다. 한국 상록수부대가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됐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엔 상록수부대보다 더 유명한 한국인이 있다. ‘동티모르의 히딩크’로 불리는 김신환(53) 감독이다. 그는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2004·2005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리베니로컵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두 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한 차례의 패배도 없이 전승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어린 축구 선수들이 가난한 신생 조국의 국민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일깨워준 것이다.

‘맨발의 꿈’은 그와 아이들이 일궈낸 희망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사업으로 재산을 다 날린 전직 축구선수 이방인은 40대 ‘인생 막장’ 동티모르에서 까맣게 잃었던 희망을 되찾는다. 잔디구장에서 뛰어보기는커녕 축구화를 신어본 적조차 없는 아이들에게서다. 축구에 대한 열망 하나로 수천 개 유소년팀이 있는 일본대회에서 우승하자 그의 팀은 동티모르의 희망이 됐다. 당시 동티모르 대통령이었던 사나나 구스마오 현 총리가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을 정도다. 제작사 쇼박스의 유정훈(46) 대표는 “구스마오 총리는 영화 촬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자 일부러 국무회의까지 열어서 보여줬다”고 소개했다.

영화 ‘맨발의 꿈’의 한 장면.

‘크로싱(2008년)’을 선보인 김태균(50) 감독은 우연히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김신환 감독의 이야기를 접했다. 2005년 동티모르로 날아가 거기서 감독과 아이들이 맨땅에서 뒹구는 모습을 보고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주연 배우로는 충무로의 연기파 배우 박희순(40)을 캐스팅했다. 그는 “축구를 해본 적 없었지만 시나리오를 본 순간 출연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유소년 축구선수 배역은 김 감독의 실제 축구팀에서 뽑았다. 영화가 뭔지도 몰랐던 아이들이었지만 전문 배우 못지않은 연기를 선보였다.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동티모르 소피아 보르지아 유엔대사는 “김신환 감독의 축구팀은 내전으로 얼룩진 동티모르에 희망을 일깨워줬다”라며 “한국도 이번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FIFA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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